초기와 달리 지금은 조기 기숙학교에 대한 정보도 풍부하고, 조기유학을 전담해 주는 기업형 현지 한국인 가정도 늘고 있기 때문에 조기유학이 훨씬 더 손쉽다. 그런 만큼 조기유학에 따른 문제 역시 만만치 않다. 조기유학에 관한 보도는 과장된 것도 있지만 그중에는 한국 교육의 문제를 정확히 짚어낸 대목이 많다. 이번 워싱턴포스트지 기사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는 아직 왕조시대의 교육체제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믿기 어려운 나라라는 그들의 분석에 이르면 우리 교육의 품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기 이중언어 교육과 대학 교육의 경쟁력 문제가 당연히 제기된다. 가장 시급한 것이 조기 외국어 교육의 개혁이다. 조기유학의 최대 요인은 ‘외국어 습득’이다. 한국 땅에서도 체계적으로 외국어를 습득하는 게 가능해질 때 조기유학의 유혹이 상당 부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어린 나이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주장들이 거세다. 외국어를 어린 나이에 배우면 두뇌가 나빠진다는 논리부터 조기 외국어 교육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지 못하게 만든다는 주장까지 반대 논리들이 다양하다. 나름대로 근거가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런 주장은 한결같이 경험칙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실제로 어린 자녀들에게 외국어와 모국어를 성공적으로 가르쳐 본 사람들은 조기 다중언어 교육의 반대논리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어릴 적에 여러 외국어를 배운다고 해서 모국어를 익히는 데에 불리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오히려 어릴 적에 더 많은 외국어를 가르쳐야 외국어 습득이 더 용이해질 수 있다는 논거가 쌓여 있을 뿐이다. 게다가 조기 다중언어 교육은 국가의 문화적 품격이나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도 결코 손해가 되는 일이 아니다.
집단교육으로는 아이들의 특기적성을 제대로 키워낼 수가 없다. 조기 외국어교육 역시 예외일 수가 없다. 이는 지금과 같은 관(官)주도 집단용 학교 외국어 교육이 일대일 맞춤형 외국어 습득을 강조하는 민(民)주도 외국어 교육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입시용 문법 외국어 교육으로 생활형 쓰임새 외국어 교육의 효율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그 절름발이 외국어 교육의 짐을 다음 세대에 이어주는 것은 그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세계화 시대의 지도자라면 외국어 하나는 번듯하게 구사하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한 나라 국민, 그중에서도 지도급 인사들의 외국어 능력은 이미 그 나라의 국력과 국격을 가늠하는 척도가 됐다. 통역 없이 자유롭게 외국의 유력자들과 직접 대화를 할 수 있는, 그런 지도자를 배출해 낼 수 없는 체제라면 우리 교육에는 희망이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식의 교육정책이 계속되는 한 조기유학이나 기러기 아빠의 고통스러운 선택을 하는 대열은 늘어만 갈 것이다. 그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정부는 지금처럼 조기 외국어 교육의 빗장을 계속 닫아 버리면 된다.
한준상 연세대 교수·학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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