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육방송의 영재교육 관련 프로그램을 보니 영재를 가려내는 일이 쉽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영재교육 자체가 어렵다는 내용이 나왔다.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영재를 무엇이라고 정의하며, 이들을 어떻게 구별해 내느냐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영재 판별은 영재성에 대한 정의와 직결되어 있는데 근래의 세계적 추세는 영재성의 범위를 확대하는 쪽이다. 최근의 이론을 보면 1970, 80년대와 달리 영재성이란 한 가지 능력이나 특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차원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과거에는 주로 지능검사를 통해 상위 3%, 혹은 상위 5%를 영재로 판별하였으나 최근에는 지능검사 외에도 창의력검사, 교과 성적, 교사의 추천, 동료 추천 등 다양한 준거에 기초해 영재를 선발한다.
이런 다양한 준거 기준에서 모두 상위 5% 내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기준에서만 상위 5%에 들어도 영재교육 대상자로 선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종전에 비해 영재 판별의 기준이 크게 완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새로운 흐름에 따라 현재 미국 정부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 연구소들은 전체 학생 중에서 15∼20%를 영재로 선발하고 있다. 영재교육 기관의 입장에서는 영재 판별 기준을 둘러싸고 그다지 큰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의 이 같은 경향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영재교육 대상자를 너무 엄격하게 제한하거나 영재교육을 엄청나게 특별한 것으로 인식하지 말자는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영재라고 하면 너무 대단하게 생각한다. 수월성 교육이 본격화하면 ‘영재반’에 들어가기 위해 따로 과외를 해야 할 것이라든지, 영재반에 들어가지 못한 일반 학생에게 좌절감을 주는 등 비교육적 효과를 유발할 것이라는 논란도 따지고 보면 ‘영재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문제다.
영재란 탁월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이르는 말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능력은 아직 잠재력에 불과하다. 잠재력은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지 탁월한 성취나 결과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재에 대해 우리 사회가 잘못된 상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학생들은 영재라는 호칭이 붙는 것을 거부하기도 하고 부담스러워하기도 한다.
영재는 그저 남들과 다른 능력을 가진 학생 정도로 생각해 주는 것이 영재에게도, 일반학생에게도 모두 도움이 된다. 이 점에서 영재교육은 일반 학급에서는 학문적 도전 의식을 경험하기 어려운, 남들과 다른 잠재력을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교육내용과 방법을 제공하자는 게 주된 목적이 돼야 한다. 국가적 차원의 인적자원 개발이란 거시적이고 거창한 목적을 강조하기보다는 개인적인 능력의 극대화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다.
영재 판별 기준을 둘러싼 논란에 발목이 잡혀 영재교육의 실천이 시작도 되기 전에 혼란을 겪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신동 순천향대 교수·교육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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