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서울시내의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살아온 이우성(가명·19) 군은 실업계고교를 졸업하는 다음달이면 ‘정든 집’이었던 양육시설을 떠나야 한다. 만 18세가 넘어 고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진학하거나 질병 등으로 보호기간이 연장되지 않는 한 시설을 떠나게 돼 있는 규정 때문.
서울시가 운영하는 아동양육시설 33곳에서 생활하는 청소년 3210명 가운데 올해 만 18세가 넘는 청년은 모두 161명. 그 중 97명은 취업이 결정됐고 51명은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다.
이 군은 아직 진로가 결정되지 않은 13명 중 한 명. 자동차검사 기술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 온 이 군은 K대 기계자동차공학과 등에 원서를 냈고 현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붙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나가면 다 돈이잖아요.”
시설을 떠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은 정착금 300만 원과 2500만 원 무이자 융자 혜택이 전부.
시설에서 같이 지내던 형들 중 몇 명은 고교를 졸업한 뒤 서울 강남의 나이트클럽에 취업했다. 형들은 183cm의 훤칠한 키에 연예인처럼 잘생긴 용모의 이 군에게 같이 일할 생각이 없느냐고 여러 번 물어왔다. 나이트클럽 웨이터가 받는 급여는 월 250만∼500만 원 수준.
“유혹적이죠. 지난달까지 자동차정비소에서 실습하면서 하루 12시간씩을 일하고 한달에 60만 원을 받았거든요. 물론 배우면서 받는 돈이라 적기도 했지만…. 하지만 웨이터 일은 미래가 없잖아요.”
이 군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와 어머니 집을 오가며 살았다. 어머니가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며 친할머니 집에 그를 맡겼고, 할머니는 “나는 못 키우겠으니 아버지 집으로 가라”고 했다. 이 군은 한 달 동안 그에게 과자만 먹인 적도 있었던 아버지 집으로 가는 대신 공중전화로 114에 전화를 걸어 “갈 곳이 없으니 보육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이 군의 목표는 대학을 졸업한 뒤 자동차검사 기술사가 되는 것이지만 “사실 진짜 해보고 싶은 건 이종격투기 선수”라며 웃는다.
이 군은 양육시설을 떠나 사회로 진입해야 하는 같은 처지의 청소년 98명과 함께 서울가톨릭청소년회 등의 후원으로 17일 동해안으로 2박3일 일정의 캠프를 떠났다.
이날 캠프 출발에 앞서 이들은 서울시청 태평홀에서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으로부터 격려의 말을 들었다. 김 추기경은 “좋은 일은 모두 고통과 시련을 겪어야만 이뤄진다”며 “여러분이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고 그것을 통해 더 값진 인생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인생을 출발하길 빈다”고 기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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