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런 내신으로 새 입시 치를 수 있나

  • 입력 2005년 1월 20일 18시 25분


서울시교육청이 공개한 ‘내신 부풀리기’ 실태는 예상대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서울 시내 5개 고교 중 한 곳이 30% 이상의 학생에게 ‘수’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고교 교사의 답안지 대리 작성 사건이 함께 불거지면서 내신의 공정성 확보에 적신호가 켜졌다.

대학입시에서 내신의 비중은 국공립대학 쪽이 높은 반면, 주요 사립대학은 내신 부풀리기를 이유로 낮게 반영하고 있다. 이번 실태조사를 보면 올 입시까지도 ‘믿을 수 없는 내신’을 근거로 치러졌다는 얘기다. 부풀려진 성적으로 인해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손해를 보았으며, 내신 부풀리기의 유혹을 뿌리치고 정도(正道)를 걸었던 고교만 피해를 본 셈이다. 교육의 근본을 훼손한 이런 결과를 수수방관해 온 교육당국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수’를 맞은 학생이 30% 이상인 학교에 대해 제재를 가한다는 교육당국의 방침은 오히려 내신 부풀리기를 부채질할 위험이 있다. 그 범위 내에선 부풀리기를 해도 상관없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올해 고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치르는 2008년 입시가 더 걱정이다. 교육당국은 2008년부터 새 입시 제도를 도입하면서 내신 위주로 치르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엉성한 내신관리로는 공정한 입시는커녕 혼란이 불가피하다. 새 제도의 현실 적합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새 입시에서 내신 산정은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전환된다. 상대평가는 학교별로 1등급부터 9등급까지 일정 비율을 정해 놓고 성적을 매기기 때문에 부풀리기는 줄어들지 모른다. 하지만 내신경쟁이 훨씬 치열해지면서 답지 대리 작성 사건과 같은 불공정 행위와 ‘치맛바람’이 확대될 공산이 크다. 부작용은 상대평가 쪽이 훨씬 클 것이다. 정부는 늦기 전에 대폭적인 보완책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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