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경준]‘금융노조’ 만든 初心어디가고…

  • 입력 2005년 1월 26일 18시 00분


코멘트
“여기가 정치판인가, (위원장 자리가) 개인의 영달과 권력을 위한 수단인가. 조합원의 알 권리, 말할 권리마저 유린하고 벌써 공백상태가 됐는가.”

26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올랐다 삭제됐다.

2000년 산별(産別)노조로 전환한 뒤 세 번째 맞는 위원장 선거를 둘러싼 갖가지 잡음에 염증을 느낀 한 지부의 위원장이 쓴 글이다.

금융노조는 8만 명의 화이트칼라 조합원을 거느린 한국노총의 최대 산별조직이자 핵심세력이다. 과거 금융노련을 이끌었던 이남순(李南淳) 전 한국노총 위원장, 금융노조 초대 및 2대 위원장을 지낸 이용득(李龍得) 현 한국노총 위원장을 배출했다.

이런 금융노조가 위원장 선거 ‘부정 의혹’으로 흔들리고 있다.

당초 금융노조는 19일 실시한 선거를 인터넷 전자투표로 깨끗하고 신속하게 치르겠다고 했다. 북한 개성공단에 파견된 우리은행 직원들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전산 장애가 발생하면서 부랴부랴 수기(手記)투표로 바꾼 게 화근이었다. 투표용지를 못 받아 인터넷으로 용지를 내려받은 분회(지점)가 있는가 하면 선거관리위원회의 직인이 찍히지 않은 투표용지도 적지 않았다.

후보로 나선 김기준(金基俊·외환은행), 양병민(梁柄敏·하나은행·현 금융노조위원장 직무대행) 씨 캠프는 투표 전부터 상대 진영에 대한 음해성 발언을 서슴지 않더니 급기야 부정선거 의혹까지 제기하면서 개표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금융노조는 선거에 관한 잡음이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는 것조차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금융인은 착잡한 심정으로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최근 기아자동차 노조의 인사 개입 문제로 노동단체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른 마당이라 더욱 그렇다.

이남순 전 위원장은 “선배로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감정만 앞세우지 말고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극복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금융노조가 사분오열된 조직을 추스르고 초심으로 돌아가 ‘금융산업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의 질을 고양한다’는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를 기대한다. 건전한 비판을 수용할 수 있어야 금융산업 자체도 발전할 수 있다.

정경준 경제부 news9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