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스님의 생명을 건 단식

  • 입력 2005년 2월 3일 10시 09분


지율스님.

스님의 생명을 건 단식이 오늘로 100일째 입니다.

부처님의 생명외경의 큰 가르침을 수지(受持)하여 천성산과 그 산에 서식하는 뭇 생명을 살리기 위한 목숨을 건 단식은 우리의 마음에 한편으로는 애잔한 감동을, 다른 한편으로는 억색해지는 가슴을 어쩌지 못하게 합니다.

도대체 ‘꼬리치레 도룡뇽’이 무엇이기에 전 우주와도 바꿀 수 없다는 한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이미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처절한 투쟁을 계속하는 겁니까. 천성산의 자연환경 보존이 소중하고 그곳에 사는 동식물 또한 우리와 함께 해야 할 생명체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 것이 과연 불제자이자 수행자인 스님이 삼보(三寶) 중의 하나라는 스스로의 생명과 맞바꾸고 국민들의 마음을 이렇게 아리고, 비참하게 만들어도 좋을 만큼 귀중한 것일런지요. 더구나 국론은 두 쪽으로 나뉘어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모두가 혼란스러워 합니다.

<생명외경의 정신에는 공감하지만>

물론 스님의 뜻이 무엇인지 짐작은 합니다. 스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정말로 소중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다운 삶의 가치가 무엇이며 인간과 자연이 왜,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 가를 일깨우고자 스스로의 생명의 불꽃을 마지막까지 불사르려 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보살행은 비록 불자가 아니더j라도 누구나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는 생명존중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고 삼라만상의 본질적 구원을 희구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이 땅에서 함께 삶을 영위하는 많은 사람들이 스님의 뜻을 이해하고 스님이 온몸으로 외치고자 하는 생명과 자비의 신념에 대한 진정성에 마음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꺼져버릴 듯 흔들리는 한 생명의 불꽃을 바라보며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조계종 수행공동체 정토회 등 종교단체와 환경 관련 시민단체 등은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한 사람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만큼 이 시점에서 가장 현명한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고 여야의원 100여명은 ‘천성산 환경영향평가 재실시 촉구 결의안’을 내기로 했다는 보도입니다. 정치권에 이어 청와대와 내각도 새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해법 마련에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이 시점에서 스님이 내건 두 가지 조건, ‘천성산 터널공사 발파작업 중단’과 ‘3개월간의 공동 환경영향평가 재실시’가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을런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공동체의 공동선에 대해서도 고민을>

그러나 정부와 국민들이 스님의 외침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면 스님 역시 우리공동체 사회의 공동선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또 다른 국민들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부처님은 결코 ‘생명’을 위해 ‘생명’을 담보로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는 도법스님의 말을 되새겨 주기 바랍니다.

인터넷신문에 올라오는 네티즌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지율스님의 주장은 매우 정당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국책사업으로서의 도로나 터널을 뚫는 것마저 반대하는 근본주의적 생태운동은 그린피스(Green Peace) 나 어스 퍼스트(Earth First) 같은 환경단체들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현존하는 모든 구조물 공법 중에 가장 친환경적인 공법이 터널공법입니다. 터널이 우회노선보다 더 친환경적이기에 스위스 스웨덴 등 환경선진국에서는 오히려 터널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천성산 터널공사는 지율스님이 단식을 벌이고 환경단체가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바람에 9개월가량 공사가 중단됐다가 지난해 11월말 재개 됐습니다. 이 때문에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공사비 추가부담만도 1조원이 넘어섰습니다”

“공사 재개는 법원의 결정에 따른 것입니다.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이 같은 결정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지 않겠습니까. 또 국가적 리더인 대통령이 한 개인이나 집단의 시위 또는 협박 등에 굴복해 국책사업을 표류시킨다면 이 나라는 뭐가 되는 거지요”

“자살 시위나 자살 협박은 결코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없는 자기의사 관철 방법입니다. 설령 국가의 어떤 결정이 비합리적이거나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더라도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시위나 여론조성행위, 행정소원, 행정심판, 헌법소원 등의 합법적 절차에 의해 바꾸도록 해야 합니다”

스님이 경청해야 할 국민들의 소리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 많은 이야기를 다 옮겨 놓을 수는 없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겠습니다.

우선 단식부터 푸십시요. 그리고 몸을 추스르고 건강을 회복한 다음 대안을 찾기 위해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도록 합시다. 어떤 정책도 최선일 수 없다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정책은 어차피 선택의 문제이고 그리고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지요.

<경계해야 할 생태아나키즘>

무조건 지율스님을 살려야 한다는 각계의 성원이나 동조에는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정치권은 스님의 생명과 구원에의 신념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무책임하기는 생태아나키즘에 편승해 무작정 목소리를 높이는 환경단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합리적인 대안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끌어내지 못하고 지금에 와서 ‘천성산과 지율스님을 살리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스님을 막다른 길로 내모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아무런 울림도 떨림도 없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스님.

국민들을 더 이상 참담하게 하지 마십시오. 수많은 국민들이 도덕적 부채감을 안고 더 이상부끄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지 않도록 현명한 결단을 내리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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