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훈]민노총, 이대론 안된다

  • 입력 2005년 2월 3일 17시 37분


노동조합의 존재가치는 무엇인가. 노조 간부가 회사와 담합해 불리한 처지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채용을 조건으로 금품을 수수한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사건은 우리 사회에 노동조합이 과연 존재해야 하는지 되묻게 한다. 국내 굴지의 자동차 대공장에서 노조 부위원장을 지낸 한 노동운동가가 토로하듯이 “노동운동이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세상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건 그만큼 전 사회적으로 도덕적 우월성을 갖고 있을 때 가능한 말이다.”

노동계의 뼈아픈 자기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노사정위원회 복귀 문제를 둘러싸고 최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벌어진 작태는 실망스러움을 넘어 절망조차 느끼게 한다. 고성과 욕설이 오가고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등 파행으로 치달은 회의 진행은 민주노총이 내부 분열과 지도부의 리더십 상실로 총체적인 조직 위기 국면에 처해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투쟁일변도 고립 자초▼

현재 한국의 노동운동은 대표성의 위기에 빠져 있다. 좀처럼 11%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낮은 조직률은 노동조합이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데에 심각한 대표성의 문제를 안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아가 산별 체제로의 전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분권화된 조직구조가 갖는 한계 또한 대표성의 위기를 야기하는 주된 요인이다. 기업 규모 간 임금 격차가 확대되고 임금·고용 유연성의 확보를 위한 완충기제로 비정규직이 활용됨에 따라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분권화된 조직구조가 갖는 한계를 반영한다.

노동운동이 대표성의 위기에 처해 있는 만큼 전국 단위의 정상조직이 갖는 위상이나 역할은 더없이 중요하다. 노조의 기본적인 조직 단위가 기업별로 분산돼 있는 상태에서는 거시적이고 전 사회적인 차원에서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역할은 바로 전국 단위의 노조 정상조직이 온전히 떠안아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양극화 문제의 해소, 사회안전망의 정비와 지속 가능한 복지사회의 실현 등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전국 단위의 노조 정상조직이 전체 노동자의 입장에서 정책 역량과 자원을 총동원해 이른바 ‘사회적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할 의제가 산적해 있다. 그러한 의제들을 다루기 위한 사회적 대화의 장으로서 노사정위원회가 법적인 상설기구로 제도화된 지도 이미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지금까지의 관성대로 사회적 대화를 기피하고 물리력을 동원한 ‘항의의 정치’를 고집한다면 노조 정상조직으로서의 역할을 방기해 사회적 고립을 자초하는 결과가 빚어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지난해에 경험한 LG칼텍스, 서울지하철,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등의 파업사태에서 보듯이 투쟁적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압력으로부터 노동운동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투쟁 일변도의 운동 노선은 조직의 응집력과 정체성을 확보해 나가는 데에도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사회적 대화에 나서야▼

지금이야말로 민주노총은 노조 정상조직으로서 합리적인 대안 제시에 기반을 두고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전체 노동자의 입장에서 정책·제도 개선 요구를 실현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아직 국민 대다수는 더욱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을 위해 노동운동이 중요한 추진 동력이 되어줄 것이라는 데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의 거듭나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김훈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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