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은 죽었다’는 책을 읽고 있다. 전직 교수가 쓴 책으로 대학과 교수는 흡혈 박쥐, 사납고 더러운 야생동물 등으로 묘사되며 그 실례가 낱낱이 제시됐다. 대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대학은 교회와 더불어 인류 역사상 ‘가장 존경 받는 기관’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의 역사는 부정과 비리로 얼룩져 있다.
올해부터 모든 대학은 충원율, 취업률, 교수 확보율 등 모든 교육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이렇게 정보가 공시되면서 각 대학의 지원율은 물론 정부 지원금에도 큰 차이가 날 것이다. G M 로빈슨은 ‘대학의 윤리’를 다룬 저서에서 “대학의 도덕적 갈등은 재정난에 직면할 때 더욱 격화된다”고 경고했다. 앞으로 경쟁에 자신이 없는 대학은 재정난 타개를 위해 비윤리적 행위를 할 가능성이 무척 높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수치 조작이다.
예전에 정부 지원사업 평가차 한 지방의 대학에 간 적이 있었다. 제시된 취업 증빙 자료들을 보고 기가 막혔다. 적지 않은 재직증명서가 한 사람의 필체로 되어 있었다. 취업률을 높이려고 업체와 함께 조작한 것이다. 그렇게 조작된 취업률 수치에 따라 지원금을 받고 수험생도 이를 믿고 지원하는 것이다. 이번 대학 입시에서도 많은 대학이 취업률을 홍보 자료로 활용했는데 취업 환경이 썩 좋지 않은 학교의 취업률이 매우 높은 것을 보고 그때 기억이 났다.
대학은 이렇게 각종 유혹에 늘 노출돼 있어 부정과 비리에 연루되기 쉽다. 대학의 윤리성을 회복하기 위해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대학은 사회의 윤리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는 사명감을 갖고 스스로 정화해야 한다. 대학 구성원의 합의 하에 ‘대학윤리헌장’을 제정해 이를 실천한다. 헌장은 대학 경영, 교수 초빙, 학생 선발, 교육 및 연구 활동, 취업, 행·재정, 대정부 관계, 홍보·광고 등의 윤리를 담아야 한다. 나아가 학내에 ‘윤리위원회’를 상설기구로 구성해 부정과 비리에 대한 견제 장치로 활용한다.
둘째, 정부는 대학이 윤리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사전 지도를 철저히 하는 동시에 비윤리적인 대학에 대해선 그 책임을 준엄하게 물어야 한다. 또 정부의 재정 지원사업 평가 항목에 윤리지표를 신설해 문제가 있는 대학에는 지원을 끊어야 한다.
셋째, 사회도 대학의 윤리 경영을 감시할 필요가 있다. 시민 단체와 언론 기관이 주축이 돼 대학의 모든 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윤리적 평가를 한다. 또 평가 결과를 매년 공표해 대학이 늘 도덕적으로 긴장된 상태에서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이제 대학은 학문적 권위뿐 아니라 도덕적 권위도 바로 세워야 할 때다.
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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