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소니 재범, 상습 음주운전도 영장 기각=김모 씨(35)는 2003년 12월 9일 새벽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택시 2대를 들이받아 900여만 원의 피해를 끼치고 도주했다.
이미 뺑소니로 처벌된 전력이 있던 김 씨는 2km가량 도주하다 붙잡혔고, 음주 측정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0.143%로 나타났다. 그러나 법원은 “피해자와 합의했고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며 검찰이 청구한 김 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회사원 윤모 씨(42)는 지난해 6월 혈중알코올농도 0.163%인 상태에서 운전하다 오토바이를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 도망치다 다시 승용차와 충돌한 뒤 붙잡혔다. 윤 씨는 사고 3개월 전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돼 무면허 상태였지만 법원은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등의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지난해 8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택가 골목길에서 놀던 어린이(8)를 치어 중상을 입히고 도주한 한모 씨(48), 2번의 음주운전 처벌 전력이 있는 상태에서 또다시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낸 임모 씨(49)와 신모 씨(25)의 영장도 모두 기각됐다.
서울중앙지검 통계에 따르면 2002년 하반기(7∼12월) 29.2%였던 뺑소니 사건 영장 기각률은 2003년 같은 기간 31.2%, 지난해 34.7%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전체 형사사건 영장 기각률은 17.4∼24.4%로 뺑소니범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낮았다.
▽적절성 논란=법원은 불구속 수사가 원칙으로, 구속영장은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 때에만 발부하는 것이라는 방침이다.
법원 관계자는 “실형 가능성이 100%라고 해도 과실로 사고를 낸 사람이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면 영장을 기각한다”며 “분명한 내부 기준에 따라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은 또 뺑소니범의 영장을 기각할 때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초범이거나, 피해가 경미한 점 등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뺑소니 사범을 형법 대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으로 엄벌하도록 했던 1973년의 도로 사정이나 도시 환경과 지금의 상황은 크게 달라 ‘치명적인’ 피해를 끼칠 위험성이 줄어든 면도 있다고 법원은 설명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뺑소니범이 피해자를 내버려둘 때는 ‘죽어도 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에 크게 보면 ‘살인미수’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다. 또 사고현장에서 달아나는 순간 피해자를 방치하겠다는 ‘고의성’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뺑소니는 과실범으로 볼 수 없다는 것.
구속 자체가 일종의 처벌로 여겨지는 관행은 바뀌어야 하지만, 뺑소니라는 비도덕적 범죄에 대한 불구속 확산은 도덕불감증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고 검찰은 주장한다.
검찰 관계자는 “뺑소니 사건은 피해 정도나 합의 여부 등을 근거로 구속 여부를 정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상습 음주운전자가 뺑소니범이 되고, 뺑소니 경험자가 다시 뺑소니를 저지르는 경향이 늘고 있다”며 “이들은 엄히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3년간 뺑소니 사건 피의자 구속영장 기각률 | ||||
기간 | 검찰 영장 청구 건수 | 법원 영장 기각 건수 | 영장 기각률 (법원 기각/검찰 청구) | 같은 기간 전체 형사 사건 영장 기각률(영장기각건수 /영장청구건수) |
2002년 하반기 (7∼12월) | 65건 | 19건 | 29.2% | 17.4% |
2003년 하반기 | 64건 | 20건 | 31.2% | 23.2% |
2004년 하반기 | 46건 | 16건 | 34.7% | 24.4% |
통계는 서울중앙지검 관내 사건 합계 기준. 자료:서울중앙지검 |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 3(도주차량 운전자의 가중처벌)
①사고차량의 운전자가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한 때에는 다음의 구분에 따라 가중 처벌한다.
1.피해자를 사망하게 하고 도주하거나 도주 후에 피해자가 사망한 때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2.피해자를 다치게 한 때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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