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 1조8000억원대 분식회계

  • 입력 2005년 2월 17일 15시 45분


하이닉스 반도체의 전신인 현대전자가 1조8000억원대 분식회계를 통해 금융기관으로부터 7762억원을 사기대출 받고 436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사용한 혐의가 드러났다.

대검찰청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반장 강찬우·姜燦佑 중수3과장)은 장동국(張東國) 전 현대전자 재정담당 부사장과 김석원(金錫元) 쌍용양회 명예회장, 김을태(金乙泰) 전 두레그룹 회장 등 4명을 분식회계를 통한 사기대출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17일 밝혔다.

또 강명구(姜明求) 전 현대전자 부사장, 김석준(金錫俊) 쌍용건설 회장 등 2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번에 수사대상이 된 5개 기업군의 사기대출 금액은 1조3435억원으로 이들 기업의 워크아웃이나 부도 등으로 공적자금 투입 금융기관이 떠안게 된 부실채무는 1조488억원에 이른다.

2001년 12월 단속반 출범 이후 공적자금비리 수사를 통해 회수했거나 회수 절차가 진행 중인 자금규모는 1818억원, 사법처리된 인원은 241명(구속 101명)이 됐다.

단속반은 금융기관에 공적자금 투입을 유발한 K, T, D사 등에 대해 연말까지 계속 수사해 부실기업주 등을 엄벌한 뒤 4년간에 걸친 공적자금 비리수사를 종결할 방침이다. 다음은 이번 수사의 주요 내용.

▽구조조정 빌미로 회사재산 횡령한 김석원 쌍용그룹 명예회장=김 명예회장은 1996년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로 진출했다가 1998년 2월 쌍용그룹에 컴백했다. 1997년 초 그룹 내 최대 계열사인 쌍용자동차가 수조원대 부실을 감당하지 못해 그룹 전체가 부도위기에 처하자 구조조정을 통해서라도 그룹을 되살리고자 정치생활을 접은 것.

김 명예회장은 쌍용정유, 쌍용투자증권 등 계열사를 매각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회장 직위를 이용해 회사재산을 빼돌렸다. 검찰이 파악한 김 명예회장의 횡령 및 배임 규모는 모두 310억원.

검찰에 따르면 김 명예회장은 1998년 8월경 개인비서 명의로 회사를 설립, 계열사가 운영하던 고속도로 휴게소 3곳을 2억4000여만원에 헐값인수했다. 이들 휴게소는 연간 13억원 이상의 수입을 거둬들이고, 영업권 가치만 32억원이었다.

1998년 9월에는 쌍용양회가 소유하고 있던 강원도 평창군 일대 임야 13만여평(감정가 42억원)을 누나 등 다른 사람으로 감정가의 1/6 수준인 6억6400만원에 사들여 회사에 38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

1999년 1월경에는 자신이 소유한 계열사 주식을 비싸게 팔아 54억원을 조성했다. 이 돈은 개인사업인 골프장 부지 내 전원주택 건설에 모두 투자했다.

2000년 5월~12월엔 금융기관에서 진 개인빚을 갚기 위해 쌍용양회 자금을 위장 계열사에 지원하게 한 뒤 이 돈을 다시 대여받는 방식으로 회사에 178억원의 손실을 끼쳤다.

금융기관의 압류를 피하기 위해 회사 소유의 땅과 자신의 집 등을 다른 사람 명의로 바꿔 놓기도 했다. 2001년 11월 쌍용양회 소유의 북제주군 임야 14만평(시가 11억원 상당)을 부인 명의로, 2000년 5월~12월 자신 소유의 제주시 감귤농장과 서울 종로구의 주택 5채(시가 46억원 상당)를 처남, 개인비서, 운전기사 명의로 각각 돌려놓은 것.

▽총수 사망으로 비자금 증발=검찰은 현대전자가 1995년 1월~2000년 10월 외화매입을 하거나 원부자재를 수입한 것처럼 장부를 조작해 현금 436억원을 비자금으로 조성한 사실을 밝혀냈다. 또 계좌추적을 통해 이 비자금이 수십개의 차명계좌를 통해서 전문적으로 관리됐으며, 2000년 4월 16대 총선 직전을 중심으로 10억원 이상의 뭉칫돈으로 빠져나간 것도 확인해냈다.

그러나 검찰은 "정몽헌(鄭夢憲) 전 현대그룹 회장의 사망으로 비자금의 용처파악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자금 전달책'이었던 강명구(불구속) 전 부사장 등은 정 회장으로부터 "모일 모시 XXXX번호판을 단 차가 모처 주차장에 있으니 얼마를 전달하라"는 식의 지시만 받았다고 진술했다. 강 전 부사장 등은 "용도를 알면 다칠까봐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머리 속에 남아있는 기억도 없다"고도 했다.

검찰 수사팀 관계자는 "돈이 인출된 시기나 관리방법 등을 볼 때 비자금은 정치권에 건네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정 회장이 사망했기 때문에 용처는 미궁으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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