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여년 전 간토(關東) 대지진 때 망국의 유민(流民)이 된 한국인들이 죽창에 찔려 이 강에 내던져졌다. 살려달라는 비명이 아직도 들리는 것 같다. 그런 아픈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행사가 난관에 부닥쳤기에 내 의지를 다지고 싶어 여길 찾아왔다.”
파문은 12일 그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추진위 내부의 ‘사당적(私黨的) 패거리’를 통렬히 비판한 글을 올리며 비롯됐다.
“이번 사업을 대통령 훈령에 입각해 추진할 것을 주장한 성실한 공무원이 위원회에서 해촉됐다. 조직을 장악한 일부 인사들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자른 것이다. 그를 복귀시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면서 일이 커졌다. 뜻있는 공무원을 좌절시키는 기형적 구조는 바로잡혀야 한다. 이게 우리가 기대했던 참여정부인가. 점점 ‘고립정부’가 되어가고 있다.”
정치인들이 다 짜놓은 ‘시스템’에 예술인이 들러리만 설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비전문가들이 예술사업을 역사적 의미와 동떨어진 사업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개발독재를 연상시키는 언행들, 구태의연한 패러다임으로 어떻게 광복 60주년을 말할 수 있는가. 시스템 전체를 바꾸자는 내게 그들은 사업프로젝트 몇 개를 주려 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전문위원 ‘정식 위촉’을 부탁한 것처럼 알려진 데 대해 그는 “문화관광부로부터 위촉 연락을 받고 명함 800장까지 받아 지난해 12월 23일부터 일해 왔다. 새삼스럽게 왜 그런 말이 나오느냐”며 어이없다고 했다.
그는 고교 중퇴 후 극작가로 데뷔해 영화 ‘학생부군신위’ 각본으로 대종상 각본상을 받았다. 설치미술가, TV드라마 제작자, 사진집과 사회평론집 저술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의 ‘독불장군’ 성격을 탓하는 시각도 있다.
“예술작업은 독자적 의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협력 없이도 안 되는 일이다. 내 성격을 거론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려는 것이다. 국가적인 예술·학술행사 추진 기관을 비전문가인 정치권 주변 인사들로 채우는 작태와 그걸 공개한 나, 어느 쪽이 더 이상한가.”
그는 자신이 추진위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처럼 보도된 내용을 부인했다.
“나는 현재도 기획전문위원이다. 일을 제대로 할 사람들로 교체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의미 있는 행사를 최고의 행사로 치르기 위해 모든 일을 할 것이다. 강만길(姜萬吉) 위원장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크다. 그분의 책을 읽고 한국 현대사를 배웠다. 그는 흘러간 역사 선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 선생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추진위가 다시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쿄=조헌주 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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