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관리공단이 24일 의결권 행사 기준을 마련함에 따라 앞으로 의결권이 어떤 방식으로 행사될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공단 측은 일단 기금관리기본법에 따라 의결권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행사하기 위해 의결권 행사 기준을 마련한 것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재계는 의결권 행사 기준이 명문화됐을 뿐만 아니라 ‘반대 기준’까지 구체적으로 마련됐다는 점에서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의결권, 어떻게 행사하나=국민연금관리공단은 △재무제표 승인 △정관 변경 △이사 선임 △경영권 분쟁 등 주요 의안별로 의결권 기준을 마련했다.
기업들 입장에서 초미의 관심사인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의안은 현재의 경영진을 신뢰할 수 없거나 인수와 합병으로 주식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현 경영진을 지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재무제표 승인은 정기 주주총회의 통상적인 의안에 대해서는 찬성하기로 했다. 다만 배당금 수준이 현저히 낮아 회사 성과에 대한 주주 배분을 부당하게 제한한다고 판단된다면 반대의사를 표시하기로 했다.
정관 변경의 경우 상법이나 증권거래법 등의 개정에 따른 변경은 찬성을 원칙으로 하고 기업가치의 훼손, 주주 권익의 침해를 초래하지 않는 한 찬성하기로 했다.
이사 선임은 과도한 겸임으로 이사 역할을 충실히 하기 어려운 이사 후보자나 이사회 참석률이 60% 이하인 사외이사 후보자는 반대의사를 표시하기로 했다.
▽의결권 행사 강화될 듯=공단 측은 국회에서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이미 내부적으로 적용해 온 의결권 행사 기준을 중심으로 수정 보완한 것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측은 “지난해부터 내부적으로 기준을 만들어 의결권을 행사해 왔다”며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공단 측이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반대의사’를 표명한 사례가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 그런데 이번에 마련한 의결권 행사 기준 곳곳에 ‘기업가치의 훼손이나 주주 권익이 침해되면 반대의사를 표명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공단 측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사회 참석률 60% 이하인 사외이사 후보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긴장하는 재계=재계는 그동안 정부나 시민단체의 입김이 국민연금 운영에 반영돼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선 외국자본보다 오히려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더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의 주식에 대한 투자를 늘리더라도 의결권을 대폭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왔던 것.
재계는 이날 공단 측의 발표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향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대기업 A사 관계자는 “이번 발표는 의결권 행사 폭을 오히려 더 확대하면서도 의결권 행사의 투명성에 대해서는 ‘일단 믿어보라’는 식”이라며 “의결권 행사 기준에는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吳文碩) 상무는 “공단 측이 의결권 행사를 통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대주주의 전횡을 막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그러나 경영권에 과도한 간섭을 하면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국민연금관리공단은 기업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기 투자자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종식 기자 kong@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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