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우려는 기우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서강대의 입학 부정사건은 대학의 도덕적 해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형사고다. 입학사무를 담당하는 교수 아들의 입학 과정에 의혹이 있다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지적에 대해 ‘대학의 자율성 침해’라는 논리로 강하게 반발하던 서강대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된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철저한 학사관리로 신망이 높던 이 학교에서 일어난 이번 사태는 다시금 대학의 자정 노력의 필요성을 절감케 한다.
▼교직원 부정입학 이것뿐일까▼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자식문제, 특히 교육문제에 있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문화’가 존재했다. 평소 매우 이성적인 사람도 자녀의 대학입학 문제만 닥치면 이성을 잃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이러한 왜곡된 애정과 일부 대학의 도덕 불감증이 결합돼 입시부정이 일어날 개연성은 상존했다. 그래서 감히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이러한 부정이 서강대에서만 있었을까. 이 사건의 당사자들은 ‘나만 재수 없게 걸렸다’고 생각하지나 않을까. 사실 이번과 같은 형태의 부정은 여러 대학에서 소규모나마 암암리에 있었을 것 같고, 특히 학부모들의 선망의 대상인 명문대는 이러한 유혹이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이번 경우처럼 노골적인 불법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합법을 가장한 편법이 판쳤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해외유학 후 특례입학’, ‘이중국적을 이용한 편법입학’, ‘지방캠퍼스나 타 대학을 경유한 우회 입학’ 같은 것은 이제 편법 축에도 못 낀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수시·특례입학, 예체능 입시, 그리고 편입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긍정적인 모습을 보인 것만은 아니다.
특히 교수 및 교직원 자녀들이 비록 제한적인 범위에서나마 특혜를 받고 있다는 항간의 소문은 그냥 소문이라고 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대학입시에서 대단히 중요한 ‘정보와 연줄’을 장악한 교수 및 교직원들이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더라도 그러한 수준을 넘어선 편법·불법의 유혹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풍토에서 사립대학들이 요구하는 대로 기여입학제를 도입할 경우 입학 부정이 더 만연할 소지가 크다. 기여입학제는 대학들의 엄격한 학사관리와 교육의 질 확보, 그리고 건전한 자율성과 도덕적 기반이 세워질 때에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 제도는 입학자격과 졸업장을 편법적으로 사거나 얻는 제도로 전락하기 쉽다.
흔히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매우 높은 나라라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교육열이 높다기보다는 학벌을 얻으려는 욕구가 강한 나라라고 표현하고 싶다. 실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벌이나 학위를 받는 데에 더 관심이 있지 교육의 과정이나 질에는 상대적으로 덜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학부모들은 자녀의 인격적인 내실화나 지식습득에는 무관심한 채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명문대 입학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기여입학제 안돼▼
입학 문제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교수 및 교직원들의 편법·탈법 행위는 단지 개인적인 비리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의 자율성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독이라는 사실을 치열하게 인식해야 할 순간이 왔다.
그러기에 이번 사건은 대학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좋은 약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강대에서 총학생회가 강력한 ‘자체개혁’을 요구하고 대학 측도 총장 이하 보직교수 총사퇴라는 강도 높은 반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모든 대학, 특히 부정의 유혹이 큰 명문대학일수록 보다 치열한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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