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엽]MBC와 최문순 사장

  • 입력 2005년 2월 25일 18시 23분


최문순 MBC 사장이 25일 취임식을 가졌다. 부장이었던 그가 수직 상승하자 안팎에서 놀라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인사는 노조위원장 출신 언론운동가가 사장이 됐다는 점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노조의 영향력이 강력해 ‘노영(勞營) 방송’으로도 불리는 MBC에 노조위원장 출신 사장이 처음 취임한 것이다.

MBC 노조는 역대 사장 인선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번에도 여러 차례 성명을 내 사장 후보로 나선 임원 출신 인사에 대해 반대 의사를 명확하게 밝혔다. MBC 출신인 고석만 EBS 사장이 사표를 내고 후보로 나오자 “개인의 이익에 따라 구성원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이 와중에 MBC 엄기영 특임이사는 “후배(최문순)를 위한다”며 후보에서 물러났다.

유력 후보 중 노조가 비판하지 않은 이는 최 부장이었고, 노조는 그가 사장으로 내정되자 “MBC 개혁의 적임자로 판단한 결과”라고 성명을 냈다.

MBC 노조는 MBC 추락에 따른 위기의식을 개혁의 명분으로 내세운다. MBC는 프로그램의 경쟁력과 신뢰도가 하락세이고, 방송사별 종합시청률도 SBS에 밀리고 있다.

문제는 MBC 추락의 원인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보도 부문을 보면, 노조는 ‘최근의 보수성향’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MBC 보도의 추락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다. MBC는 당시 정권과 갈등을 겪는 일부 신문에 대해 흥분이 걸러지지 않은 비난 리포트를 잇달아 내보냈다. 뉴스 도중 앵커가 벌떡 일어나 시청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방송광고제도에 대해서도 자사 이기주의적인 감정적 보도로 눈총을 샀다. 당시 신설된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은 끊임없이 편파 논란을 일으켰고 지난해 탄핵 방송이나 SBS와의 보도전(戰)에서도 ‘감정적 보도’는 예외 없이 재연됐다.

MBC는 공영방송을 자처하면서 시청자들의 감시 장치를 외면하고 있다.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에 대한 국회 감사를 비공개로 할 것을 고집하고 자료도 그 자리에서 수거해 간다. 감사원이나 국회 감사를 받는 KBS에 비하면 MBC의 외부 감시 장치는 없다시피 하다.

직원의 60%가 간부급인 기형적 인력 구조도 경영진이 노조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던 데서 비롯된다.

최 사장 내정 직후 나온 언론운동 진영의 평을 보자.

“언론 개혁과 방송 민주화의 일선에서 수구보수 세력과 맞장을 뜬 인물.”(경남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언론노동계에서 전설적인 인물.”(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

이를 보면 앞으로 최 사장과 노조의 관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최 사장은 이 점을 의식한 탓인지 인사 태풍을 예고하는 팀제 시행이나 임금 10% 삭감 등을 제시했다. 노조와 ‘정책 대결’을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것은 과감한 결단이지만 MBC 내부의 문제일 뿐이다.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공정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프로그램의 실현 방안이 더 시급하다. 그것이 없는 개혁은 MBC 구성원만을 위한 ‘나눠먹기’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평범한 말이지만 최 사장의 파트너는 시청자다.

허엽 문화부 차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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