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빌 게이츠가 한국 교육현실 안다면

  • 입력 2005년 3월 1일 18시 32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미국 고교교육은 시대에 뒤처진 폐물이 됐다”며 글로벌경제에 대처할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기르기 위한 획기적 교육개편을 촉구했다. 미국 13개주지사들은 이에 부응해 모든 수업과 시험을 대학과 기업이 필요로 하는 수준에 맞추는 ‘미국 고교졸업장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빌 게이츠가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학진학률은 81%나 되지만 대학교육의 경제적 수요 충족도는 60개 경제권 가운데 59위다. 고교평준화 이후 학력(學力)은 떨어지고 있는데 대학에서는 정원에 맞춰 신입생을 받은 뒤 학점만 따면 자동 졸업시키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는 쓸 만한 인재가 없다며 연간 2조8000억 원을 신입사원 재교육에 쏟아 붓는다. 기업 수요에 맞는 적재적소의 ‘생산적 인력’이 모자라니 재교육비 부담까지 커지는 것이다. 대졸 실업자의 증가도 경쟁력 있는 인재 부족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의 중고교 교육 현장은 잘못된 ‘교육 평등주의’에 빠져 학습의욕을 꺾고, 학교의 역할을 사교육시장에 떠넘기고 있다. 정책당국 역시 경쟁력 있는 교육정책 추진에 몰두하기는커녕 학벌차별 철폐라는, 세계가 비웃을 미명 아래 실력위주 경쟁사회의 싹을 자르려는 움직임을 방치하거나 부채질한다.

지금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대학서열화 깨기’가 아니라 세계와 겨룰 만큼 경쟁력 있는 대학을 만드는 일이다. 지식을 최대 무기로 삼는 글로벌경제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경쟁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고교평준화로 모든 학교를 하향 평둔화(平鈍化)할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키워주는 섬세하면서도 치열한 교육을 해야 한다. 이는 저소득 농어촌 등 소외 계층과 지역일수록 절실하다.

빌 게이츠는 “고교에서 대학 수학(修學)이나 취업에 필요한 능력을 길러주지 못한다면 수백만 명의 인생을 망치는 도덕적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진국일수록 더 열심히 교육혁명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우물 안 삼류교육만 붙들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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