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남북한 지역간 불균형 문제가 제일 먼저 심각하게 제기될 것이다. 그때 제기되는 문제는 지금 우리 남쪽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양상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그것은 통일된 지 15년이 된 독일이 아직도 과거 동서독 지역간 불균형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는 것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애초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충청권 득표 전략으로 내세운 수도 이전 문제는 수도권 인구 과밀화 해소와 국토의 균형발전이 그 표면상 명분이었다. 그런 논리라면 통일 이후 우리는 북한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 다시 한번 수도 이전 문제를 논의해야 할지 모른다.
▼영구분단 전제로 한 부처이전▼
현재 세계적으로 수도가 양분되어 있는 나라는 독일뿐이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한 독일은 서독의 수도였던 본에서 베를린으로 수도를 옮겼다. 그러자 도시의 황폐화를 우려한 본 지역 주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해 할 수 없이 수도기능을 나누어 연방정부 20개 부처 가운데 8개 부처를 본에 남겨 놓게 되었다. 현재 세계에는 인구 1000만 명 안팎의 수도로 일본 도쿄, 중국 베이징,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가 있으나 국토 균형발전이란 미명하에 수도를 옮겨야 한다고 논란을 벌이고 있는 나라는 없다.
한마디로 이번에 ‘행정중심 복합도시’란 이름으로 수도기능의 일부를 옮기기로 한 것은 나라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충청권의 표만 의식한 여야의 정략적 야합이며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내린 위헌결정 취지에 정면으로 어긋난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헌법상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상호 그 권능을 존중하도록 되어 있는 삼권분립체제 국가이다. 정부와 국회가 헌재결정을 무시하고 편법으로 수도기능의 일부를 옮기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수도기능의 양분화는 결국 막대한 예산의 낭비와 함께 국정운영의 비효율화를 초래하여 가뜩이나 떨어지고 있는 국가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릴 위험성이 크다. 지난해 스위스 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세계 104개국 중 29위로 2003년 18위보다 11단계나 떨어졌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도 한국은 세계 주요 60개 국 중 35위로, 1996년의 27위에서 8단계나 떨어졌다. 우리가 선진한국을 건설하려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쓸데없는 일에 국가적 에너지를 허비해서는 안 된다.
수도기능 이전의 최대 명분은 국토의 균형발전이다. 그러나 무엇이 발전의 기준인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말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역별 주민 1인당 연소득을 보면 울산이 2687만 원으로 1위이고 충남 2위, 경북 3위, 충북 4위로 충청권이 전국 16개 시도 중 상위권에 속하고 있다. 서울은 8위로 중간쯤이다. 대구 광주 부산이 하위권이다. 국토의 균형발전은 각 지역이 지역특성에 맞게 발전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지 행정기관이 들어서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견이다. 울산은 정부 부처 하나 없어도 소득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계층간 불균형부터 해소를▼
지금 우리는 지역간 불균형보다 빈부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계층간 불균형이 더 큰 문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민의 정부 아래서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노무현 대통령 정부 아래서도 전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수도기능 이전에 소요되는 막대한 돈을 저소득층 노인층 장애인 국가유공자 가족 지원과 고등학교 무상교육에 쓴다면 국민은 훨씬 보람 있게 느낄 것이다.
박범진 건국대 초빙교수·정치학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