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일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더 이상 배웠다는 사람 앞에서 기 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시작되자 이 학교 지하 강당을 메운 280명의 입학생은 여기저기서 눈물을 글썽였다.
이날 문을 연 양원초교는 국내 최초로 학력인증을 받을 수 있는 성인 대상 초등학교.
중고교부터만 가능하던 성인 대상 학교의 학력인증이 지난해 1월부터 1년 3학기제에 한해 초등학교까지 확대되도록 평생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이 학교가 문을 열 수 있었다.
올 1월 교육인적자원부 인가를 받은 이 학교는 신입생 모집을 시작해 접수 한 달도 채 안돼 280명의 정원을 모두 채웠다. 수업료는 한 달에 5만 원. 정년퇴임한 초등학교 교사를 합쳐 8명의 선생님이 이들을 지도하게 된다.
만 12세 이상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입학조건 때문인지 학생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소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박중은(81) 할머니는 “학교에서 한글 대신 일본말만 가르치자 아버지가 못 다니게 했다”며 “어린 마음에는 일본어라도 계속 배우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기회가 되면 중학교에도 진학해 아이들에게 배운 것을 가르치고 싶다”고 덧붙였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학교 근처에 가 보지도 못했다는 김옥순(74·서울 마포구 망원동) 할머니도 “식당일과 떡볶이 장사를 하며 대학에 보낸 자식들에게 글을 배우기는 했지만 사실은 많이 쑥스러웠다”며 “이제 제대로 교육을 받게 돼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최연소 입학생인 30대 젊은이는 3세 때 머리를 다쳐 현재도 9세 지능에 머물러 있지만 다시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입학을 선택했다.
이 학교 연구주임 장진숙(47) 교사는 “경상도에서 기차를 타고 통학을 하거나 학교에 다니기 위해 생업을 정리하는 등 신입생들의 향학열이 아주 높다”고 말했다.
신입생 대표로 입학선서를 한 이정숙(61·여) 씨는 “한글을 잘 몰라 일주일 동안 연습했는데도 생각대로 잘 안 됐다”며 수줍게 웃었다.
이날 오전 입학식이 끝나고 반을 배치받은 학생들은 교실로 가 담임을 맞았다. 이날 학생들이 받은 책은 국어 수학 바른생활 즐거운생활 등 7권. 일반 초등학교 1학년생이 배우는 교재와 같다.
종례시간 담임교사의 구호에 맞춰 인사를 한 학생들은 우르르 선생님 앞으로 달려나왔다.
“숙제는 없어요?” “내일 학교 나와야 돼요?” “책을 한 권 못 받았어요” 등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질문은 여느 초등학교의 모습 그대로였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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