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과 이전 대상 지역의 주민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은 거의 무반응이다. 의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동안의 천도 논란에 진이 빠진 탓일 것이다. 다행이다 싶은지 정부는 ‘국민홍보’조차 생략하려는 태도다. 천도 반대에 앞장섰던 일부 언론도 명분은 살렸다고 여기는지, 야당 분열과 관련 지역의 이해 충돌 차원으로 축소해 사안에 접근하는 듯하다.
축소된 형태라지만, 수도 기능 이전 계획은 사패산 터널과 아산만 방조제, 핵폐기물 처리장보다 훨씬 심대하게 우리의 미래를 좌우하는 대수술이다. 이러한 대수술을 여야가 합의했다고 해서 강행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수술 결과가 기대해도 좋은지, 수술만이 최선의 방법인지 더 묻고 더 따져야 한다.
내가 틀리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이 수술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병을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고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고 본다.
▼행정도시, 수도권 광역화 초래▼
행정도시 건설은 수도권을 광역화할 뿐이다. 서울과 행정도시 모두에 근접한 중간지역의 도시화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개발은 시장(市場) 수요에 따라 생겨난다. 수도권 집중 억제를 외치던 사람들이 규제 완화와 서울공항 개발 가능성을 공언하는 판국이다. 서울-대전 두 핵을 중심으로 광역화된 수도권은 전국의 인력과 자원을 삼키는 블랙홀이 돼 지역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혁신도시’ 역시 정부 의도대로 조성될지 의심스럽다. 혁신의 핵심은 민간의 자발적 창의적 경쟁과 협력이지, 중앙 정부의 하향식 개발 사업이 아니다. 자생적으로 생긴 실리콘밸리를 계획적으로 복제하려는 많은 계획은 실패했다. 혁신의 모델은 개발독재 시절에 계획적으로 건설됐던 대덕단지가 아니라 모험적 상인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동대문의류상가다.
부작용 또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 기능의 분산에서 오는 비효율과 낭비는 불 보듯 뻔하다. ‘소프트시대’의 생명은 정부 간, 부문 간 시너지를 확보하는 일이다. 화상회의가 머리를 맞댄 업무 협의를 대체할 수 있다면 청와대나 종합청사 회의 참석을 위해 하루를 버리는 과천 공무원들은 다 바보인가. 정보화가 진행될수록 중추관리 기능은 도심에 모인다는 것이 지리학의 정설이다.
부동산투기 역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 집이 이사하려면 현재의 내 집과 상대의 집을 합해서 최소한 세 집이 움직여야 한다. 행정도시만 해도 정부 기구의 3분의 2가 움직인다. 이러한 대이동과 혁신도시 건설이 촉발할 갖가지 변화는 전국을 부동산 투기장으로 만들 것이다. 강력한 감시로 이를 막겠다지만, 이미 같은 정부 아래서 다수의 고급 관리와 국회의원이 부동산 ‘재테크’로 쏠쏠한 재미를 본 바 있다.
왜 정부 여당은 국민 과반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수술을 강행하려고 하는가. 왜 수도 이전 반대를 소리 높이 외치던 야당은 슬며시 꼬리를 내렸는가. 득표 전략을 앞세운 정략적 이해와, 정부가 원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개발독재적 발상이 절묘하게 맞물린 탓이라고 생각한다.
▼전국이 부동산 투기장으로▼
세상에는 돌이킬 수 있는 일과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다. 잘못된 수술로 버린 몸은 쉽게 원상회복이 안 된다. 이 불행한 정책으로 국토 공간이 더 왜곡되면 그때는 회복 불능이다. 과거 정권 때 ‘선무당 장관’이 잘못 내린 작은 결정 하나로 국도 연변이 모텔로 뒤덮인 일도 있지 않은가. 잘못된 수술로 몸을 버리게 되는 시간 또한 되돌릴 수 없다. 좀 더 나은 치료법이 있었다고 한들, 일단 놓친 기회를 어떻게 하랴. 의료사고에 대해선 그래도 책임을 묻고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잘못된 정책 결정과 그로 인한 혼란, 낭비, 기회의 상실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강홍빈 객원논설위원·서울시립대 교수·도시계획학 hongbin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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