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증권회사의 펀드매니저로 취직해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해 오던 그는 술로 인해 가정과 직장을 잃고 쓸쓸히 병동에 누워 있는 신세가 됐다.
김 씨는 취직한 이후 맨 정신으로 집에 간 기억이 많지 않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기 때문에 술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 회사 상사의 주장.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던 김 씨가 회식에 몇 번 빠지자 상사는 “술 마시는 것도 능력”이라며 은근히 압박했다.
술자리가 시작되면 대개 3차까지 갔다. “매일 힘들어하면서도 이상하게 점점 더 술을 찾게 됐다”는 그는 맨 정신에 귀가하면 집에서라도 술을 마셨다.
김 씨는 결국 알코올의존증 때문에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4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김 씨는 “직장인 중에 나처럼 자기도 모르는 새 알코올의존증에 걸린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억지 술 권하기, 잔 돌리기, 폭음, 나쁜 술버릇, 음주운전 등 술을 둘러싼 악습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한국의 이런 독특한 음주행태는 외국에도 꽤 알려져 있다.
2002년 프랑스의 한 주간지는 한국의 술 문화를 ‘밤마다 취하는 한국인들’이라고 표현했다. 이 기사는 “한국에서는 직장상사를 따라 술집을 돌아다니는 것은 의무다. 술을 잘 마시면 승진의 기회도 많이 온다”고 비꼬았다.
제프리 존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명예회장은 한 외국인 회사 사장에게서 ‘술자리에서 직원이 상사를 폭행한 것이 한국의 풍토에서 해고 사유가 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술자리라면 해고 사유가 안 된다”고 답하고는 한국의 음주행태를 한참 동안 설명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음주 관행의 독특함은 통계적으로도 나타난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가 200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과음자(최근 한 달간 다섯 잔 이상 술을 마신 날이 5일 이상인 사람) 비율은 31.3%로 미국의 4배에 이르렀다.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 조사 결과 음주에 의한 사망, 질병, 가족들의 간접피해 등 음주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 14조5000억 원에 이르렀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8%로 미국 2.3%(1992년), 일본 1.9%(1987년), 캐나다 1.1%(1992년) 등 주요 선진국보다 훨씬 높은 수치.
최근 각 기업에서 음주문화 개선을 위해 갖가지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음주행태는 좀처럼 고쳐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음주문화 캠페인을 벌여 온 시중은행 관계자는 “캠페인을 한다고 한국 사회에서 이 문화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조성기(趙聖基) 음주문화연구센터 본부장은 “좋게 말하면 ‘단합’이지만 달리 보면 개인이 상실되고 전체는 퇴화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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