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 취업자 "학력 낮춰서 취업하겠다"

  • 입력 2005년 3월 13일 15시 17분


지방 국립대를 나온 임모(35) 씨는 올해 직업전문학교에 들어가 특수용접을 배우고 있다.

임 씨는 "대학 전공과 취업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며 "떳떳하게 취업하거나 창업하기 위해서는 전문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최고"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사람들이 '대학까지 졸업한 사람이 무슨 용접일이냐'고 만류하지만 소신껏 열심히 살고 싶은 나의 선택을 믿는다"고 덧붙였다.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직업훈련장을 찾아 되돌아가는 고학력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고졸자들이 진학하던 직업전문학교를 비롯해 생산현장의 중간 기술자를 양성하는 기능대학, 취업률이 높은 전문대학으로 전문대 및 4년제 대졸자들이 'U턴'하고 있는 것.

이모(31·강원대 졸) 씨는 원주직업전문학교 메카닉디자인과 신입생이다.

이 씨는 "중소기업에서 3년간 근무하다 지난해 초 적성에 맞지 않아 회사를 그만 둔 뒤 도무지 새 직장을 구할 수 없어 애를 먹었다"며 "전문기술을 배워 안정적인 직업을 얻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직업전문학교에서 대졸자가 없는 과가 없다"며 "대졸자들은 다시 시작하는 만큼 더욱 열심이라 큰 자극이 된다"고 덧붙였다.

홍모(33·여) 씨는 서울의 유명 사립대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았지만 올해 D전문대 안경공학과에 들어갔다.

홍 씨는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 결혼한 뒤 두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지내왔는데 이제 재취업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나 다름없다"며 "나이 들어서도 전문성을 살려 일을 하고 싶어서 다시 진학했다"고 말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산하 직업전문학교의 연도별 고학력자 지원 현황에 따르면, 2002년 969명에서 2003년 1816명, 2004년 2947명, 2005년 4472명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전문·기능대학도 마찬가지여서 기능대학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고학력자 지원이 29.8% 증가했다.

인천직업전문학교 관계자는 "기업의 고용구조 변화, 장기화된 청년실업난으로 고학력자들이 실습 위주의 교육프로그램과 산학연계로 쉽게 직장을 구할 수 있는 직업학교로 몰려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능대학 관계자는 "대졸자 뿐 아니라 일반대학 재학 중 진로 고민 끝에 전문기술을 익히려고 기능대학에 재입학하는 사례도 많다"며 "이들 대부분이 인문·사회계열 출신 지원자들"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경제 불황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진로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바로잡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연세대 김농주(金弄柱) 취업상담과장은 "일종의 서열의식 탓에 대졸자들이 관리직 등 특정 직종에 '진로편식증'을 갖고 있다"며 "고학력자도 직종에 상관없이 소신껏 일자리를 찾아가는 바람직한 취업문화 현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인하대 김흥규(金興圭·교육학) 교수는 "무작정 성적위주, 사회분위기에 따라 전공을 고를 것이 아니라 미래사회의 변화를 예측한 진로선택 패러다임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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