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시장경제 강좌]<4>기업의 역할과 기업가 정신

  • 입력 2005년 3월 13일 17시 37분


《초중고교 교과서에 나와 있는 기업의 역할 가운데 하나가 ‘생산의 주체’다. 하지만 생산의 주체라는 어설픈 정의를 빼고 나면 학생들에게 기업은 여전히 안개처럼 뿌연 존재다. 기업에 대한 교육과 인식이 부족한 탓이다. 동아일보가 창간 85주년 기념사업으로 대한상공회의소와 공동 기획한 ‘청소년을 위한 시장경제 강좌’의 네 번째 강의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대강당에서 열렸다. 주제는 ‘기업의 역할과 기업가 정신’. 강원(康元)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 개인과 사회에 대한 기업의 존재 이유와 가치, 역할을 알기 쉽게 풀이했다. 강의 내용을 소개한다.》

▽회사에 가면 무슨 일을 할까=학생들은 흔히 성인이 돼 취직을 하면 △날마다 술을 마시고 △시키는 일만 하며 △물건을 팔러 다니고 △사장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는 훨씬 더 재미있고 중요한 일을 하는 곳이다.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며 △아버지의 자동차도 만들고 △사장이 후배 가족에게 일거리를 주는 곳이다.

학교에서는 성적을 놓고 학생들이 경쟁한다. 동시에 친구를 사귀기 가장 좋은 장소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지만 회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되고 소속감을 느끼게 한다. 회사는 일종의 커뮤니티(공동체)다.

기업에서는 시키는 일만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곳이다. ‘신라면’은 한국 라면시장을 석권한 대표적인 브랜드다. 이 라면은 농심의 한 연구팀이 만들었다. 개인의 아이디어가 신상품을 만들어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회사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쓸 수 있는 물건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드는 곳이다.

아버지에게 효도하기 위해 자동차를 만든다고 하자. 기업이 없다면 개인이 대장간에서 혼자 다 만들어야 한다. 반면 자동차 회사에서는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더 많은 차를 만든다.

회사에 들어가면 사장이 될 수도 있다. 사장은 돈도 많이 벌지만 후배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사장이 일을 잘 못해서 다른 회사에 뒤진다면 직원들은 봉급을 못 받거나 해고를 당하기 마련이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기업은 △여럿이 모은 돈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더 싸고 좋은 물건을 만들며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회사와 관계된 모든 사람에게 만족을 준다.

불우이웃에게 옷을 사준다고 가정하자. 옷을 사주려면 사람(주주), 천을 파는 사람(공급자), 옷을 만드는 사람(근로자), 돈을 꿔주는 사람(채권자)이 있어야 한다. 옷을 사주려는 사람이 1000명이라면 각자가 공급자, 근로자, 채권자와 계약을 해야 한다.

반면 1000명이 돈을 모아 회사를 세운 뒤 공급자, 근로자, 채권자와 계약한다면 그만큼 비용이 줄어든다. 회사는 자본(돈)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곳인 셈이다.

낭비에 대한 관점도 기업과 개인이 다르다. 기업은 낭비를 안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같은 가격에 더 좋은 물건을 만든다. 1990년대 후반에는 휴대전화 값이 130만 원을 넘었다. 하지만 지금은 50만 원짜리 휴대전화가 나와 있다. 130만 원대 휴대전화보다는 50만 원짜리를 사는 게 소비자에게도 절약이다.

개인에겐 양보가 미덕이지만 기업이 양보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일이다. 경쟁에서 밀리면 양보를 하기보다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메모리 반도체는 미국의 인텔이 가장 먼저 만들었지만 일본 도시바로 주도권이 넘어간 뒤 지금은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이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여기서 탈락한 인텔은 비(非)메모리 반도체로, 도시바는 디지털 가전 반도체라는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었다.

회사는 도움을 준 모든 사람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다. 이는 손익계산서에서 잘 드러난다.

회사의 원가는 근로자와 원재료 및 부품 공급업체에 돌아간다. 또 판매관리비는 직원에게, 이자는 회사에 돈을 빌려준 은행과 채권자에게, 세금은 국가의 몫이다. 맨 나중에 남는 순이익은 주주가 갖는다.

▽경쟁원리로 크는 기업=개인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은 경쟁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돕는다.

MP3플레이어 제작 회사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진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4가지다. △경쟁사에 시장을 양보 △서로 상의해 시장을 분할 △경쟁사보다 더 좋은 물건을 제작 △MP3를 응용한 새 아이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경쟁사에 시장을 양보하면 매출이 줄기 때문에 종업원을 해고해야 한다. 또 공급업체에 납품대금을 지불하지 못해 이들까지 망하게 할 수 있다.

종업원이나 공급업체에는 돈을 줬지만 이익이 나지 않아 주주가 자기 몫(배당)을 가져가지 못한다면 결국 회사 문을 닫게 된다. 돈을 못 버는 회사를 계속 운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더 좋은 물건을 내놓거나, 여의치 않다면 MP3를 이용해 새로운 분야를 찾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은 회사는 물론 개인과 국가에도 도움이 된다. 모든 국가와 회사가 담합해서 경쟁을 그만두면 기업은 도산하고 나라도 망한다. 이는 옛 소련이나 동유럽권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미 확인됐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Q: 기업이 경쟁않고 담합하면? - A: 소비자만 피해…法으로 금지▼

12일 열린 ‘청소년을 위한 시장경제 강좌’의 네번째 강의에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강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의 ‘기업의 역할과 기업가 정신’ 강의를 진지하게 듣고 있다. 원대연 기자

기업의 역할에 대한 강의를 들은 청소년들은 노동조합과 독과점 문제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다. 강원 수석연구원은 전통적인 노사 관계의 성격이 바뀔 것으로 예상했다.

―기업 운영에 있어 노동조합의 역할은 무엇인가.(서울 고척고 2년 이재승 군)

“기업은 물건을 팔아 번 돈으로 근로자 직원 주주 등에게 나눠주는데 그 비율을 어떻게 정할지가 문제다. 근로자의 몫이 적다고 판단되면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데 그 역할을 노동조합이 맡는다. 그러나 배분 비율을 놓고 타협을 해야지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한국도 강성 노조가 없어지고 ‘노사협의회’라는 개념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제는 근로자들도 회사의 주식을 갖게 돼 전통적인 노동자와 자본가의 구분이 흐려졌다.”

―현실에서는 기업이 경쟁을 하지 않고 학생교복 업체처럼 담합을 하는 일도 적지 않다.(서울 영등포여고 3년 김민선 양)

“기업도 개인처럼 경쟁을 하기보다 편하게 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담합을 통해 경쟁을 회피하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정부가 독과점금지법을 만들어 카르텔 또는 담합을 막고 있다. 소비자도 이제 힘이 생겨 기업이 담합을 한다고 판단되면 정부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기업은 경쟁보다 독점을 선택해야 이익이 커지는 것 아닌가.(서울 도봉고 2년 김수근 군)

“특정 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판단되면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가 중요한 감시자로 개입한다. 정부가 이동통신 사업자를 여러 곳 선정한 것도 경쟁구도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김두영 기자 nirvana1@donga.com

▽3월 19일(토) 오후 3시에는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가 ‘청소년의 용돈관리’라는 주제로 강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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