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총리의 구상이 교육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것인지 의문이다. 전문대뿐 아니라 실업계 고교와 4년제 대학의 관계는 또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의 구상은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검토가 결여되어 있다. 대학 개혁이 시급한 과제이지만 교육 실정을 모른 채 이뤄진다면 거꾸로 개악이 될 수 있다.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교육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대학이 당면한 문제가 매우 복잡하며 대학 간의 사정이 또 다르다”고 강조한 것은 교육 당국으로선 뼈아픈 얘기다. 직접적인 표현을 삼갔지만 그의 말은 교육부가 대학 실정을 잘 모른다는 뜻으로 들린다. 정 총장은 “한국처럼 대학의 위상이 높은 나라도 드물지만 대학을 대학답게 만들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 부족한 사회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교육열 1위 국가의 모순▼
지금까지 정부 정책이 대학의 본질적인 역량 강화에 집중되지 않고 입시제도 개입과 ‘사교육비 줄이기’ 같은 일에 머물렀다는 그의 지적은 옳다. 인기에 영합하는 입시정책은 넘쳐 났지만 대학 경쟁력을 위한 진지한 성찰은 없었다. 교육부가 대학을 모른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한국이 교육열 세계 1위의 국가이고 국민 모두가 교육전문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만 교육 자체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높지 않다. 학부모들도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입시제도의 맹점을 분석하고 교육 현실에 분노하기도 하지만 이해관계가 사라지면 한발 물러나 버린다. 학교 주변이 불합리하고 비교육적인 일로 가득 차 있어도 개선되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고 같은 시행착오가 반복되는 이유다.
학교폭력 문제만 해도 곪을 대로 곪은 상태에서 한 교사의 용기 있는 고발이 나오기 전까지 사회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자기 아이가 학교폭력에 희생됐다고 아무리 거리에서 외쳐도 메아리 없는 절규에 머물고 만다.
고등학교 교실에서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수업을 듣지 않고 잠을 자는데도 정부와 학교는 모른 척 눈을 감고 있다. 잘 가르치는 교사와 무능한 교사를 구별하는 제도가 우리에겐 없다. 공부에 재능이 뛰어난 학생을 격려하고 지원하기보다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더 강하다. 이런 나라가 교육에 미래를 거는 ‘교육 공화국’이 될 수는 없다.
▼진짜 교육 강국이 되려면▼
교육 문제는 국민 다수가 자포자기의 심정에 이르러 있다. 불씨를 다시 살려 내려면 교육 현장을 아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학 개혁은 세계 일류 대학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우리 대학 현실과는 어떻게 다른지 파악해서 그 격차를 메워 주는 것만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대학을 다그치기 전에 경쟁국과 같은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게 우선이다.
초중등교육의 문제는 사회가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음이 드러나고 있다. 교사의 양식에 호소하는 일에 국민은 지쳤으며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다. 학부모들이 조직화된 힘으로 학교의 이곳저곳을 살피고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해야 한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교육 문제를 일부의 손에만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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