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영국에서 배운다]<下>지역주민위한 개발

  • 입력 2005년 3월 25일 17시 49분


영국 런던 남부 저소득 주택가인 페컴 지역 재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페컴 도서관. 우리로 치면 구립도서관에 해당한다. 이름은 도서관이지만 탁아시설과 민원상담실, 주민 휴게 공간 등을 갖춘 구민회관의 성격을 겸하고 있다. 런던=장강명  기자
영국 런던 남부 저소득 주택가인 페컴 지역 재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페컴 도서관. 우리로 치면 구립도서관에 해당한다. 이름은 도서관이지만 탁아시설과 민원상담실, 주민 휴게 공간 등을 갖춘 구민회관의 성격을 겸하고 있다. 런던=장강명 기자
▼영국에선… 재개발 시작前 주민 설문조사▼

영국 런던 남부의 페컴 지역. 저층의 낡은 건물들 사이로 깔끔한 금속 재질의 아치형 문과 포장이 잘된 마당, ‘ㄱ’자 모양의 현대식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과 어울리지 않게 예쁜 이 건물은 영국건축재단 윌 알솝 회장이 설계한 ‘페컴도서관’이다. 사우스워크 자치구가 페컴 지역 재개발을 위해 세운 공공도서관이다.

여러 공공시설물 중에 하필 도서관을 건립한 이유는 뭘까. 알솝 회장은 “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실시한 주민 설문조사를 반영한 결과”라고 말했다.

“세금이나 주택 문제를 물어볼 수 있는 시설, 젊은 어머니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 지역공동체가 결혼식장이나 파티 장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많았다. 주민 요구사항을 모아보니 ‘복합도서관’이라는 답이 나왔다.”

실제 도서관에는 서가 외에도 민원상담실과 탁아시설도 있었다. 도서관 4층은 전망이 좋아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내와 가깝다는 것을 보게 해 저소득 주민들의 소외감을 덜어주기 위한 설계라는 것.

페컴도서관을 이용하는 주민은 한 달에 3만6000여 명. 당초 예상의 3배가 넘는 수치다. 도서관 건립 뒤 주변 지역의 슬럼화 현상도 줄어들었다고 했다.

▼한국에선… 세입자 배려없이 철거 진행▼

25일 낮 12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검은 잠바 차림의 남자 10여 명이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 중이었다. ‘세입자 갈 곳 없다’는 피켓을 들고 선 이들은 청계천변인 중구 수하동 인쇄골목에서 인쇄업소나 식당을 하는 사람들.

이 지역은 서울시의 청계천복원사업과 도시환경정비사업(옛 도심재개발 사업)에 따라 한 개발회사가 강북에서 가장 높은 지상 38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을 짓겠다며 사업을 착수해 현재 철거가 진행 중이다.

수하동에서 25평짜리 순대국집을 운영하는 한호석(韓虎錫·39) 씨는 “도시재개발이나 청계천 복원사업 취지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그 사업 때문에 일터에서 쫓겨나 거지가 되게 생겼는데 어떻게 찬성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빈곤지역에 도서관… ‘슬럼化’ 막아▼

영국의 도시재생 사례들에서 볼 수 있는 정신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도시개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지 퍼거슨 영국왕립건축가협회장은 “지역 주민에게 도움이 되는 건축이어야 한다는 게 도시 재생의 철학”이라며 “공사현장 근로자도 그 지역 사람을 고용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런던 동부 카나리워프 재개발의 경우 ‘지역사회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해 현재 카나리워프 금융가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3분의 1가량이 동부 저소득층 지역 주민들이다.

또 뉴캐슬의 세이지 게이츠헤드 음악당 측은 유명한 음악가들에게 지역 예술가나 주민들에게 강의를 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의 리허설 장면을 폐쇄회로(CC)TV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지역의 음악학도나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반면 서울시는 사대문 안에서 진행하는 도시환경정비사업에 대해 역사와 문화를 회복하는 재개발을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지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대책은 뾰족한 것이 없는 상태다.

런던=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29일 ‘도시재생 세미나’▼

주한 영국대사관은 29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도시재생과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다.

‘도시 재생을 통한 생활환경 개선’과 ‘도시계획의 환경적 쟁점’을 주제로 영국건축재단 윌 알솝 회장과 영국 셰필드 및 맨체스터 지역 재개발을 주도한 도시계획가 알리슨 니모 등이 주제 발표를 한 뒤 청중과 질의 응답 시간을 갖는다.

참가를 희망하는 사람은 ppa@uk.or.kr 앞으로 간단한 자기소개와 연락처를 적어 보내면 된다. www.uk.or.kr/architecture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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