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과 미래’라는 주제로 강의를 맡은 김중수(金仲秀)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한국경제가 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한 1962년 이후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21세기 한국경제의 비전도 제시했다.
그는 미국의 세계경제전망 전문조사기관인 ‘글로벌 인사이트’의 분석을 인용해 현재 우리보다 경제력 규모가 한 단계 뒤진 인도(12위)는 2020년엔 9위로 뛰어오를 것이라고 소개했다.
또 중국은 현재 7등에서 3등으로 훌쩍 뛰어오르고 러시아는 16위에서 8위로 경제력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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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장은 “하지만 고도성장을 해 온 한국의 미래는 다소 불투명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경제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경제는 상승곡선을 타기 어렵다”며 분발을 촉구했다. 다음은 강의 요지.
○한국경제가 걸어온 길
1960년대 초반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가 채 안 됐다. 외환위기 직전에 1만2000달러까지 올라갔다가 환란(換亂) 직후 7000달러로 곤두박질쳤다. 현재 1만5000달러 수준인 1인당 소득이 15년 안에 선진국 수준인 3만 달러로 되려면 우리 경제가 매년 5%씩 성장해야 한다.
경제성장의 시동을 걸기 시작한 1960년대엔 노동력이 풍부할 뿐 아니라 국민의 교육열도 아주 높았다. 오늘처럼 쉬는 토요일에 여러분처럼 강의 들으러 오는 것도 높은 교육열에 힘입었다. 하지만 당시엔 우리가 워낙 가난해서 자본이 부족했다. 저축을 못하니까 자본이 없고, 투자가 안 돼 물건도 못 만들어 냈다. 기술도 없고 대기업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환경 때문에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대외 지향적 성장정책을 폈다. 그리고 선진국의 원조와 수입에 의존하던 체제에서 직접 생산하는 체제로 바꾸어 나갔다.
“우리가 잘 만드는 걸 만들고 잘못 만드는 것은 사 쓰자.”
자연히 경제성장 구도도 수입 의존에서 수출 주도로 바뀌게 된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로 우리가 필요한 석유 등 원자재를 수입했다. 해외기술도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왕성한 기업가 정신에 힘입어 경제가 성장했다. 삼성 현대 대우그룹 등은 1970년대 이후 크게 발전했다.
1970년대엔 전국적으로 ‘잘살아야 한다’는 모토 아래 새마을운동을 벌였다.
자동차를 만들고 정유 화학을 키우면서 중화학공업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수출에서 중화학공업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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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성장에 따른 부작용
가난했을 때 고기를 먹으면 몸이 건강해질 수 있지만 계속 고기를 먹으면 살이 찌고 콜레스테롤이 높아지는 문제가 나타난다.
국가도 그런 과정을 겪는다. 나라에서 포항제철, 현대자동차, 정유회사, 조선회사 등을 만들어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키우다 보니 한쪽으로 치우치는 문제가 생겨났다. 고도성장을 통해 임금도 계속 올라갔다. 임금을 많이 받으면 잘살아서 좋지만 너무 많이 올라가면 물건 값이 비싸져 경쟁력을 잃게 된다.
결국 경제에 피가 돌지 않는 ‘동맥경화’가 생겼다. 1990년대 들어 고도성장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가를 낮추는 등 안정화 정책으로 선회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왜 왔을까.
정부는 경제를 키우기 위해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했다. 특정 부문에 혜택을 주면서 기업을 성장시키는 정책을 폈다. 이 결과로 1970년대 말부터 재벌이 생겨났다. 재벌들은 조선과 자동차회사를 만드는 등 여러 형태의 사업을 통해 성장했다. 정부가 혜택을 주면서 남의 돈으로 과도성장을 해 버린 것이다. 이런 와중에 강성 노동조합도 생겨났다.
과다한 부채로 부실기업이 증가하면 은행도 부실해진다. 1997년에 많은 한국 기업들이 부도를 냈다. 하지만 개방화와 경제 구조조정을 통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조기 졸업할 수 있었다. 외국에 더 많이 문호를 열고 각 부문에 경쟁 개념을 도입해 위기를 빨리 극복했다.
○기업의 생산성과 기술진보가 중요
마라톤을 예로 들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면서 가장 빨리 뛸 수 있는 능력을 ‘성장잠재력’ 또는 ‘잠재성장률’이라고 한다.
1980년대 잠재성장률은 9%로 매우 높았다. 하지만 1995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진 5%대였고 지금은 4%대다.
지금은 투자에 의해 성장하는 때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기술진보를 통해 성장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 경제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경이 없는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지식경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여러분에게 남겨진 과제다. 남북간 경제협력을 좀 더 활성화하고 경제개혁도 마무리해야 한다. 복지제도를 갖춰서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을 지원해야 한다.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통해 선진 한국경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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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개방하면 외국 자본에 다 먹히지 않을까요?”▼
“시장을 개방하면 외국 자본이 우리 시장을 잠식하고 대규모 독점도 발생하지 않을까요.”
“과외까지 받으면서 열심히 공부하는데 왜 취직이 안 되나요.”
김중수 KDI 원장의 강의가 끝난 뒤 초중고교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쏟아냈다.
서울 잠실고 2학년 김모 군은 “경제발전을 위해서 시장을 개방하고 외국기업과 경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한국 시장이 외국자본에 잠식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지금은 글로벌 시장이며 한국시장으로만 한정해서 봐서는 안 된다”며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1류 기업과 경쟁하려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 정발중 1학년 이모 군은 “생산성 향상과 기술진보를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왜 주5일 근무제를 하느냐”고 물었다.
김 원장은 “주5일 근무제를 하는 것은 무조건 쉬자는 것이 아니라 휴식을 취한 뒤 더욱 열심히 일하자는 것”이라며 “일하는 시간이 매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기 때문에 일할 때는 더 열심히 해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답변했다.
인천 새말초교 6학년 최모 양은 “과외까지 받아가면서 학교를 졸업하는 사람들이 왜 취업하기가 어렵나요”라고 질문했다.
김 원장은 “테니스 교습이 피아노 회사에 취직하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안 되듯이 취업과 상관없는 과외를 받아서 그럴 것”이라며 “사회가 어떤 사람을 필요로 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강의 및 질의응답 시간이 끝난 뒤에도 몰려든 학생들로부터 다양한 질문과 함께 사인 공세를 받기도 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4월 2일(토) 오후 3시에는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이 ‘세계로 나가야 산다’는 주제로 강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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