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기부]수혜대상-방법 구체적

  • 입력 2005년 3월 27일 18시 24분


이달 중순 미국 오리건 주립대는 2100만 달러라는 거액의 유산을 증여받았다.

우리 돈으로 212억 원이 넘는 돈을 남긴 사람은 이 대학 수의학과 졸업생인 로이스 애치슨 씨. 그는 지난해 8월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애치슨 씨는 기부금의 절반은 수의과대학을 위해 쓰고 나머지는 10년간 신탁하게 했다. 대학 측은 고인의 뜻을 기려 부속병원의 명칭에 그의 이름을 붙일 계획이다.

그는 생전에도 수의학도들을 위한 장학기금을 부담해 왔다.

최근 미국 하버드대의 대학신문인 ‘하버드 크림슨’은 2004년 3월 작고한 아서 마스 교수가 하버드대 학생들에게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BSO) 연주회의 공짜 티켓을 선물하고 있다고 전했다.

1946년부터 보스턴 심포니에 기부해 온 마스 교수는 자신의 유산계획에 ‘공짜 티켓 프로그램’을 포함시켰던 것. 이에 따라 대학 측은 이달부터 그의 기부금으로 매주 한 차례 7, 8장의 BSO 티켓을 사서 선착순으로 나눠주기 시작했다.

선진국에서는 유산증여가 기부의 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재산을 대물림하기보다 학교나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미국 대학의 도서관과 강당, 건물 등의 명칭에는 기증자의 이름을 딴 것들이 많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비정부기구(NGO)에 대한 유산증여가 연간 1억5500만 유로(약 2035억 원)에 이르고, 영국에서는 유산증여가 12억 파운드(약 1조5760억 원)로 기업의 자선단체 기부금보다 5배가 많다. 또 독일의 경우 최근 설문조사에서 성인의 26%가 NGO에 유증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유니세프 일본위원회는 1998년 유산증여를 처음 소개한 뒤 2000년 유산증여자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점차 호응을 얻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외국에서는 생전에 재산목록을 작성해 두고 오랜 기간에 걸쳐 단계적, 계획적으로 기부를 한다. 각종 재단 및 단체, 학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도 상속인 지정, 상속계획 등을 통한 증여기부 방법과 세금 혜택 등에 관한 상세한 안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부 대상도 막연히 ‘불우이웃을 돕는 데 써 달라’는 식이 아니라 특정 대학이나 단체, 병원 등을 구체적으로 지정하며 기부 방법과 기간, 후속 조치까지 조목조목 명시하는 경우가 많다.

타인과 사회를 위해 돈을 쓰고, 존경을 받으며 생을 마감하는 이들을 선진국에서 널리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부(富)가 클수록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사회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의식이 사회 곳곳에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2001년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설립자인 빌 게이츠, 월가의 대표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씨 등 미국의 쟁쟁한 부호들은 ‘책임 있는 부자(Responsible Wealth)’라는 단체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들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상속세 인하를 대선공약으로 내걸자 강력한 반대운동을 펼쳤다.

이들이 굳이 세금이란 통로를 통해서라도 재산의 사회 환원이 필요하다고 우긴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의 말을 통해 해법을 찾아보자.

“몇 명의 경주자는 100m 앞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주자가 같은 지점에서 출발하는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상속세는 필요하다.”(빌 게이츠)

“상속세를 폐지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다. 이는 2000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의 장남들을 뽑아 2020년 올림픽 대표팀을 구성하는 것과 비슷하다.”(워런 버핏)


특별취재팀

▼유산기부 어떻게▼

유산을 기부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할까.

우선 유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아름다운 마음’을 갖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다.

기부를 결심한 후에는 유언장을 작성한다. 유언장에는 본인의 재산목록과 함께 이 재산을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기부할 것인지를 적는다.

유언장이 완성되면 증인 2명을 참석시킨 가운데 공증인 앞에서 유언 취지를 말하고 공증인의 공증을 받는다. 공증을 하는 이유는 유언장의 분실, 타인에 의한 의도적인 은닉 및 파기 등을 피하기 위해서다.

다음에는 상속집행인을 지정한다. 상속집행인은 상속 기간에 고인의 재산을 관리하고 유언 내용을 집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유언이 제대로 집행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변호사 등 전문가와 상담을 거치는 것이 좋다. 사회에 유산을 환원하겠다고 유언하면서도 현행법상의 절차를 지키지 않아 기부를 못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1993년 박모 씨는 전 재산을 어린이보호단체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자살했으나 이 재산은 어린이보호단체가 아닌 외동딸에게 상속됐다.

박 씨는 사망 전 녹음테이프 4개 분량의 긴 유언을 남겼지만 ‘녹음한 유언의 경우 증인이 있어야 한다’는 민법 제1067조 규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영리단체 아름다운재단은 지난해 8월 법률 금융 회계 분야의 전문가 25명으로 구성된 유언컨설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들은 유언과 유산 기부 절차를 상담, 자문, 공증해 주고 있다.

공익사업 컨설팅업체 ㈜도움과 나눔의 이원규(李元揆) 박사는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유산 기부는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유언장 작성을 포함한 유산 기부에 대해 사회의 전반적인 관심을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이상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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