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0월 노 전 대통령은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재직 시절 조성한 비자금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중 일부를 추가로 찾아낸 다음날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500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대부분 정당 활동에 사용하고 1700억 원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눈물까지 흘렸다.
10년 가까이 지난 29일, 검찰이 또다시 노 전 대통령이 감춰놓은 비자금 중 31억여 원을 찾아냈다.
▽어떻게 찾아냈나=비자금을 감추는 데는 노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 비하면 ‘아마추어’라는 게 검찰의 설명. 이번에 찾아낸 비자금은 ‘이두철’이라는 실존하지 않는 사람의 이름으로 1993년 개설된 계좌에 예치돼 있었다. 이 계좌는 개설 이후 한 번도 입출금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 2월 이와 관련된 첩보가 검찰에 들어왔고, 검찰은 계좌추적을 한 뒤 노 전 대통령의 자금관리인인 이모 씨를 불러 조사했다. 노 전 대통령 변호인에게 계좌추적 결과를 들이대자 노 전 대통령 측도 시인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비자금을 주로 친인척 등의 명의로 금융기관에 맡기거나 주변 인사들에게 맡겨 주식을 사놓아 상대적으로 쉽게 검찰의 추적에 걸려들었다.
반면 전 전 대통령은 부동산 등에 돈을 묻어놓거나 사채시장 등을 통해 자금을 세탁하는 등 지능적으로 비자금을 감춰 추적이 쉽지 않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얼마나 회수됐나=1997년 전·노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은 대법원에서 추징금 2628억 원이 확정됐다.
이번에 추징한 액수까지 합치면 노 전 대통령에게서 추징한 실적은 2091억여 원으로 80%에 육박한다. 전 전 대통령의 경우 아직 전체 2205억 원 중 532억여 원만 추징하는 데 그쳐 추징 실적이 24% 정도에 불과하다.
그동안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게서 1998년 당시 신한-동화-한일은행, 나라종금 등에서 차명계좌에 들어 있던 1700억 원가량을 찾아내 추징했다. 이듬해에는 노 전 대통령 사돈의 신동방그룹, 한보그룹, 쌍용그룹, 동생 재우(載愚) 씨 등에게 맡겨 놓은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찾아내 법정 싸움 끝에 일부를 회수하기도 했다.
반면 전 전 대통령은 은닉한 재산이 쉽게 발견되지 않아 검찰이 애를 먹고 있다. 검찰은 2003년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재산명시 신청까지 했다. 전 전 대통령은 당시 법정에서 자신의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동에 자신의 장인과 공동명의로 된 수억 원대의 부동산이 발견돼 검찰에 압류당하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해 5월에는 전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李順子) 씨가 직접 관리해 온 130억 원대의 자금을 찾아냈으며, 이 중 20억 원가량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계좌와 연결됐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두 전직 대통령의 총 비자금 규모 자체가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이 같은 추징 실적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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