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두(사진) 동국제강 사장. 지난달 9일 노동조합과 무교섭 임금협상을 타결한 그는 근로자들에게 ‘고맙다’를 연발했다.
동국제강의 무교섭 임금협상 전통은 올해로 11년째. 1995년 한국 대기업 가운데 최초로 무교섭 임금협상을 이끌어낸 이후 매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1989년에는 노조가 전면파업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노사관계가 심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노조가 임금협상을 회사에 모두 위임할 정도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동국제강의 노사 화합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립과 갈등의 노사 관계가 서로에게 실익이 없다는 점을 깨달은 것뿐이라는 게 전 사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가져왔다.
동국제강 노사는 1991년 대립적 노사관계를 청산하자는 노사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3년간의 실험 끝에 1994년 노사는 항구적 무파업까지 선언했다.
당시 회사 매출은 9000억 원. 1년 뒤인 1995년에는 매출 1조 원을 돌파했고, 무쟁의 무교섭이 10년째 되던 지난해에는 매출 3조 원 시대를 열었다.
노사 관계 안정이 회사의 성장과 맥을 같이 했던 것이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외환위기가 한창인 1999년 부산공장을 폐쇄하고 포항제강소로 주력 공장을 옮겨야 했습니다. 부산공장의 대대적인 인력 조정이 필요했지요. 하지만 노사 합의에 따라 회사는 부산공장을 닫는 대신 새 공장을 부산에 운영키로 해 일부 근로자를 흡수하고, 나머지는 포항에 신규 투입했습니다.”
인력 조정 없이 사업 구조조정을 달성한 모범 사례가 탄생했다.
노조는 회사의 조기 안정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했고, 이로써 동국제강은 후판을 중심으로 한 포항제강소 주력 체제로 빠르게 전환된 것이다.
회사는 임금 동결을 감수하면서까지 사 측에 협조한 근로자들에게 임금 인상으로 보답했다. 지난해 동국제강의 대졸 신입사원 연봉(성과급 포함)은 3500만∼4000만 원 선으로 제조업 최고 수준이다.
또 임원진이 참석하는 ‘월례 책임경영회의’에 노조위원장이 참여하는 등 회사의 안건에 노조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투명 경영도 실천하고 있다.
“노사 간 신뢰는 서로를 이해하고 따뜻하게 바라볼 때 가능하며, 이것이 투명 경영의 시작이라는 게 경영진의 생각입니다.”
노사 화합은 자연스럽게 지역경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처럼 노사 관계 안정에서 생긴 여유의 일부를 지역 공헌 활동에 쏟게 된 것이다.
동국제강은 올해 초 그룹 산하 송원문화재단을 통해 사업장이 있는 부산 울산 인천 등지의 대학생 50명에게 2억 원의 장학금을 주었다. 지방대 출신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다.
또 2월에는 사업장 인근 독거노인 160명을 대상으로 경로잔치를 벌이고 1억6000만 원의 생활자금을 지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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