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3>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로알드 호프만

  • 입력 2005년 4월 3일 17시 21분


우리 몸은 140억 년 전 빅뱅우주에서 만들어진 가벼운 원소인 수소와 그보다 수십 억 년 후 어느 별에서 만들어진 무거운 원소들이 만나 이루어진 화학원소들의 집단이다. 그렇다면 요즘처럼 ‘화학물질’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의미로만 사용하는 것은 얼마나 자기 비하적인 일인지 모른다.

문제는 현대를 사는 교양인에게 화학의 전모를 제대로 전달하는 책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1981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고 나서 세 편의 시집과 시화집을 출간했고, 심미적 혜안으로 과학을 해석하는 많은 글을 남긴 호프만의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The Same and Not the Same)’는 참으로 권장할 만한 책이다.

호프만은 다음 두 문장에서 볼 수 있듯이 화학이 어떻게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지를 흥미롭게 서술할 뿐 아니라 과학의 오용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를 보여준다.

“나는 과학의 전체적인 영향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가장 깊은 의미에서 민주화라고 생각한다. 과학은 옛날에는 특권 엘리트에게만 허용되었던 필수품과 안락함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창조물이 어떻게 이용되고 오용되는가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화학은 비료를 통한 영양의 증진, 소독을 통한 위생의 향상, 의약품을 통한 질병의 퇴치 등에 기여함으로써 지난 한 세기 동안에 인간 수명이 두 배로 연장되는 데 중요한 몫을 했다.

반면 이처럼 우리 삶에 안락함을 가져다준 화합물들이 환경오염을 가져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화학의 발전에는 대립적인 요소들이 긴장을 조성한다. 서로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한 화합물의 미묘한 차이 때문에 어떤 물질은 뛰어난 약효를 나타내고, 유사한 다른 물질은 부작용을 가져오는 긴장감이다.

화학에서 대립적 요소는 결합-분해, 정적-동적, 평형-섭동(攝動·주요한 힘의 작용에 의한 운동이 부차적인 힘의 영향으로 인하여 교란되어 일어나는 운동), 천연물-합성물, 순수-불순, 유익-유해, 순수-응용 등 여러 면에서 드러난다. 호프만은 이런 다양한 화학의 대립적 요소에 대해 적절한 사례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한편 대부분의 화학자가 화학의 실용성만을 내세우고 화학에 대한 일반인의 무지와 부당한 공격에 대해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데 비해 호프만은 환경론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는 열린 자세를 보여준다.

호프만이 말하는 대로 우리가 물질세계에 대해서, 특히 인간이 세상에 더해 놓은 합성화합물에 대해 기본적인 내용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문을 닫아버리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확대를 배척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21세기의 민주 시민에게 어느 정도의 과학 지식은 필수적이고, 일반인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책이 긴요히 요구되는 것이다.

그 점에서 화학의 인간적이고 예술적인 면을 보여주는 이 책은 진정한 교양과학도서라 할 만하다.

김희준 서울대 교수·화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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