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대치동 엄마들의 신화?

  • 입력 2005년 4월 6일 18시 23분


최근 ‘엄마들’이 출판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서점에 나가보니 자녀교육 관련 코너에 엄마를 겨냥한 책들이 쫙 깔려 있었다.

‘한국 토종 엄마의 하버드 프로젝트’ ‘미국 5개 명문대에 합격한 효섭 엄마의 재능을 살리는 자녀교육법’ ‘엄마형 리더십’ ‘엄마가 키워주는 굿모닝 초등 사고력’ 등.

안 읽었다간 아이가 뒤처질 것 같은 느낌에,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하는가 궁금한 마음에 저절로 지갑을 열게 된다.

그 시발점은 작년 출판계를 강타한 ‘대치동 엄마들의 입시전략’이다.

일찌감치 이 책을 읽었던 필자는 당시 놀랍고도, 우울한 기분에 휩싸였던 기억이 있다. 명문대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목숨을 건 듯한 삶의 방식과 주도면밀한 전략전술이 놀라웠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불만과 좌절감에 잠시 우울했다.

‘대치동 엄마들은 이렇게 한다더라’ 하는 소문을 수없이 듣긴 했지만 책에 나타난 실상은 그런 소문을 뛰어넘어 아연실색할 수준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대치동의 실상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실화를 들었다.

“아이에게 국어와 논술을 2시간가량 지도했어요. 공부를 마치고 나오니 아이의 엄마가 부르는 겁니다. ‘그 대목은 아이한테 그렇게 오랫동안 설명할 필요가 없었고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옛날 이론이니 새로운 이론을 가르치라’는 주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엄마가 계속 문밖에서 엿들은 겁니다.”

사실 엄마의 역할이 현모양처에서 재테크 전문가로, 다시 자녀의 ‘학습 매니저’로 바뀐 지는 오래된 일이다. 우리나라 같은 학벌중심 사회에서 자녀교육에 다걸기(올인)하는 것은 어쩌면 현명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들의 철두철미한 자녀관리 방식이 부러울지언정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그 폐쇄적 문화이다. 대치동에서 직장주부는 경쟁력이 없다. 황금보다 귀중한 입시관련 정보나 학원 소식에 어둡기 때문이다.

대치동에 첫발을 디딘 사람들은 외국에 도착한 사람처럼 당황한다고 한다. 대치동에만 가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학원관련 정보를 쉽게 얻을 수가 없기 때문. 어떤 학부모는 “아는 사람이 가르쳐 준 학원에 아이를 보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 아이는 다른 학원에 다니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런 적자생존의 교육시스템에서 교육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주문이리라. 문제는 ‘대치동 엄마들’의 이런 폐쇄성이 대치동 내에서만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것. 대치동 엄마들은 대치동에 살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상실감과 박탈감을 안겨주며 교육은 물론 사회전체에 대한 불만을 고조시키고 있다.

대한민국 엄마들에게 대치동은 하나의 아이콘이다. 거기에만 진입하면 명문대에 보낼 수 있다는 환상을 주는 아이콘이다.

‘대치동 엄마들’은 우리의 치열한 입시경쟁과 맹목적 교육열이 빚어낸 현대판 신화이다. 신화는 극소수의 성공담이 부풀려져 만들어진다. 그래서 대치동에 뛰어든 엄마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정성희 교육생활부장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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