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인혁당사건을 기억해야 할 이유

  • 입력 2005년 4월 8일 21시 03분


오늘은 인민혁명당(인혁당·人革黨) 재건위원회 사건의 피고인 8명이 사형 당한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다. 1974년 4월 중앙정보부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좌파 혁신계 인사들이 10년 전 적발됐던 인혁당을 재건해 민청학련을 배후 조종하고,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고 발표했다. 1975년 4월 비상군법회의에서 관련자 23명 중 8명은 사형을, 15명은 징역 15년에서 무기징역까지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인혁당의 실재 여부, 고문 주장, 불공정한 재판 진행, 즉각적 사형 집행 등을 둘러싸고 논란을 빚어 왔다. 2002년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중정에 의한 조작사건”이라고 발표했다. 그런가 하면 수사에 관여했던 중정 간부는 고문과 조작을 부인하고 있다.

우리는 피고인들의 유무죄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사법절차의 정당성을 짓밟는 것이 곧 자유민주주의의 생명선을 끊는 것임을 되새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이 사건 재판은 2심인 고등군법회의에서 피고인들의 진술이나 반론을 청취해야 하는 사실심리를 전혀 하지 않은 중대한 흠결을 안고 있었다. 그런데도 최종심인 대법원에서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법무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법원 확정판결 20시간 뒤에 8명을 한꺼번에 사형 집행했다. 설령 인혁당을 결성했다 하더라도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였느냐 하는 양형의 문제도 남았다. 일련의 과정은 대법원이나 법무부의 묵인 또는 협조, 아니 권력의 작용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유족들은 ‘사법 살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은 재판관의 ‘오판 살인’을 막기 위한 사형제 폐지가 논의되는 시대다. 아무리 30년 전 유신체제 아래였다고 하지만 이 재판은 사법부 역사상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상처일 것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청와대에 냈고, 국가정보원이 재조사 중이다. 진실 복원, 진상 규명을 통해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한다. 또 이 사건은 침묵해서는 안 될 때 침묵하는 사법부가 얼마나 뼈아픈 오욕의 역사를 남기는지 일깨우는 교훈으로 기억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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