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인도 정보기술(IT)의 메카인 방갈로르 공항. 취재팀이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자마자 남루한 옷을 입은 꼬마들이 우르르 몰려와 창문들 두드리며 1루피(약 24원)만 달라고
애원했다. 한 시간 뒤 도착한 한 생명공학기술(BT) 회사. 정문에 들어서자 깔끔하게 정리된 잔디밭과 첨단 연구실이 눈에 띄었다.
연구인력도, 연구수준도 첨단이었다.
18세기에서 21세기로 ‘시간이동’을 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시아의 미래가 꼭 장밋빛만은 아니다.
빈부격차, 부패, 실업과 같은 급속한 산업화의 부작용이 아시아의 앞날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민족 갈등, 종교 갈등, 국가 간 갈등과 같은 경제외적인 문제도 아시아의 도약에 장애가 되고 있다.》
● 中 지역간 소득격차 13배
지난해 10월 중국 서부 미개발지역인 쓰촨(四川) 성의 한위안(漢源) 현에서는 성난 농민 10만여 명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직접적인 이유는 토지보상액에 대한 불만. 그러나 그 바탕에는 경제발전에서 소외된 농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깔려 있었다.
2002년 기준으로 상하이의 1인당 소득은 4만646위안(약 530만 원)이고 중남부 구이저우(貴州) 성은 3153위안(약 41만 원). 약 13배에 이르는 지역 간 소득격차는 훗날 심각한 지역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다.
또한 개인별 소득격차의 심화는 계층갈등의 요인이 될 것이다.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중국의 극빈층은 전체 인구의 17%인 2억2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6명 중 1명이 인간다운 것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인도는 더욱 심각하다.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극빈층이 전체 인구의 35%인 3억7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3명 중 1명꼴이다. 인도의 경제수도인 뭄바이 공항에서 조금 떨어진 다라비라는 곳은 ‘아시아 최대 슬럼가’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100만 명의 극빈층이 모여 사는 이곳엔 토굴 같은 집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 태국 종교충돌 작년 120명 사망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KOTRA의 현지인 직원들은 모두 화교다. 쿠알라룸푸르 KOTRA무역관 측은 “입사에 필요한 자격요건을 따지다 보면 중국계만 뽑힌다”며 “말레이 정부의 ‘부미푸트라’(토종 말레이인) 육성정책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직을 비롯한 고임금 직종은 대부분 화교들이 차지한다. 재계총수도 거의 화교들이다. 부미푸트라는 상대적으로 저임금 직종에 많다. 그러다 보니 두 민족 간의 갈등이 깊을 수밖에 없다. 현지에서는 미국의 흑백갈등보다 더 골이 깊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공식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카스트 의식’은 사회에 깊숙하게 뿌리박혀 있다. 불교가 국교인 태국은 종교 갈등이 심상치 않다. 남부 3개주에서 이슬람교도들의 분리 독립운동이 계속되면서 최근까지 유혈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4월에도 정부군과 이슬람교도의 충돌로 120명이 사망했다.
● 경찰 뒷돈수입이 월급의 몇배
베트남에서 교통경찰은 최고 인기직종의 하나다. 매연배출차량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뇌물을 받아 월급의 몇 배가 넘는 부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단속에 걸린 운전사들은 미리 준비해둔 5만∼10만 동(약 3000∼6000원)을 공공연히 경찰에게 건네주곤 한다.
하노이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 김모(35) 씨는 “베트남은 ‘검은돈’을 찔러주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는 곳”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세무서에 뇌물을 정기적으로 주지 않으면 직원들이 세무조사를 이유로 한달 두달씩 사무실에서 진을 치고 산다”고 말했다.
인도도 스위스 비밀계좌의 상당수가 인도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패가 국가적 두통거리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지난해 발표한 국가별 투명성 순위(146개국 조사)에서 중국(71위) 인도(90위) 베트남(102위) 인도네시아(133위) 등 아시아 각국은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곳곳에 넘쳐나는 실업자는 당면한 사회불안요인이다. 제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도 공식실업률이 10%를 넘는다. 갈수록 노동집약산업에서 자본집약산업으로 산업구조가 고도화되고 있어 실업문제의 해결 전망도 밝지 않다.
● 매연…황사… 숨막히는 도시
지난달 21일 중국 베이징(北京)의 골목길 곳곳에서 불법 복제한 DVD를 팔고 있는 상인들이 하나같이 머리에 얇은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취재팀과 동행한 한 베이징 시민은 “경찰 단속이 무서워 보자기를 쓴 게 아니라 공기가 나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손수건 같은 것으로 입과 코를 막은 채 오토바이를 몰고 있는 장면은 이제 인도 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의 대도시에서 하나의 ‘거리패션’으로 자리 잡았을 정도다. 고도성장에 따른 환경오염 문제도 머지않은 시기에 아시아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
아시아가 지닌 또 하나의 고민은 북미나 유럽연합(EU)과 달리 역내(域內) 통합이나 협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대만문제나 인도와 파키스탄 간 분쟁처럼 언제든지 무력충돌로 비화될 수 있는 것도 적지 않다. ‘하나의 아시아’는 아직 요원하다.
▼사회문제가 된 인구▼
지난달 취재팀이 아시아 각국을 찾았을 때 현지인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사회문제는 인구문제였다.
첫째, 인구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특히 산업화와 함께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각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의 경우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떠돌아다니는 이농(離農)인구가 1억 명으로 추산된다. 인도의 뉴델리와 뭄바이도 거리에 사람이 넘쳐난다.
둘째,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한 성비(性比) 왜곡이다. 중국은 현재 신생아의 남녀 성비가 118 대 100에 이른다. 인도도 부유한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남아선호사상이 강하다. 지난해 신생아 기준으로 뉴델리의 남녀 성비는 122 대 100이나 됐다.
셋째, 고령화사회의 도래다. 중국은 1980년 이후 범국가적인 ‘한 자녀 갖기 운동’으로 인구 증가율이 1%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2020년대 중반부터 노동인구가 감소하면서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인도의 현재 인구증가율은 1.6%. 이 추세대로라면 2035년경에는 중국보다 인구가 많아질 것이다.
개발도상에 있는 아시아 각국에서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상관성에 대한 논쟁도 뜨겁다. 공산당 주도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중국은 빠르게 나아가고 있는 반면 민주주의를 해 온 인도는 그보다 뒤처진 것에 대한 논란이 그중 하나다.
상당수 인도 엘리트들은 “올바른 비전이 있다면 강력한 리더십이 경제발전 속도를 높일 수 있다”며 “인도처럼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주장을 다 반영하다 보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며 중국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에 유리하다”는 반박도 적지 않았다.
22년간 집권한 마하티르 빈 모하맛 말레이시아 전 총리에 대해서도 서구 언론은 ‘반(反)민주적’이라고 비판하지만, 그가 2002년 은퇴의사를 밝혔을 때 수많은 국민이 “제발 가지 말라”며 눈물로 호소할 정도였다. 다만 퇴임 후엔 “마하티르 집권 때 민주화를 이룩했어야 더 활기찬 국가가 됐을 것”이라며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특별취재팀▼
▽경제부=권순활 차장
공종식 기자
차지완 기자
▽국제부=김창혁 차장
이호갑 기자
황유성 베이징특파원
박원재 도쿄특파원
김승련 워싱턴특파원
▽사회부=유재동 기자
▽교육생활부=길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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