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국민연금]기금운용 부담 적지만 ‘財源’이 걸림돌

  • 입력 2005년 4월 17일 18시 46분


‘젊은 누리꾼(네티즌)’이 국민연금제도에 반발하고 있다는 통념과 달리 본보와 KRC의 조사에서는 30, 40대가 현 제도를 가장 불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금 고갈 위기가 ‘정부가 운용을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20대에서는 55.8%, 50대 이상에서는 55%인 반면 30대는 64.9%, 40대는 62.1%로 높았다.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응답도 다른 연령대에서는 12.3∼14.8%인 반면 30대에서는 26.5%로 가장 높았다. 현재 내는 보험료가 ‘많다’는 반응도 20대는 62.2%, 50대 이상은 63%인 반면 30대는 72.2%, 40대는 70.3%로 나타났다.

정부, 여야, 학계의 일치된 견해는 기금고갈 위기의 근본 원인이 ‘적게 내고 많이 받는’ 현재 연금구조에서 비롯됐다는 것. 그러나 조사에서 이를 문제로 지적한 사람은 7.9%에 불과했다. 이 인식 차이의 해소가 연금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는 지적이다.

▽선 재정안정화, 후 사각지대 해소?=현행 월 평균소득의 9%인 연금 보험료를 2010∼2030년 15.9%로 올리고 현재 평균소득의 60%를 받는 노후 연금을 2008년까지 50%로 줄이자는 정부 개정안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를 손질하자는 것. 이렇게 하면 기금고갈 시점을 현 2047년에서 2070년 이후로 늦출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의 수)을 1.4명으로 잡고 계산한 것이어서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를 반영하면 2070년까지 연장은 무리다. 게다가 보험료는 놔두고 노후 연금만 50%로 줄이자는 열린우리당의 방안은 고갈 시점을 5년 연장하는 효과밖에 없다.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그래서다.

문제는 또 있다. 평균소득의 60%인 연금을 다 받으려면 국민연금에 40년 가입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 재정추계에서도 2070년의 평균가입기간은 21.7년에 불과하다. 김연명(金淵明)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입기간까지 감안하면 실제 받는 돈은 평균소득의 33% 선에 불과한데 여기서 연금액을 더 줄이면 연금은 그야말로 푼돈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현재 지역가입자 중 납부예외자, 체납자로 최소 가입기간(10년)을 채우지 못해 연금혜택에서 소외될 위험이 높은 ‘사각지대’는 600여만 명에 달한다. 문형표(文亨杓)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우선 재정안정화 문제를 해결하고 이런 사각지대는 경로연금 등 공적부조를 확대해 해소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순천향대 김용하(金龍夏·경제금융학) 교수는 “사각지대는 현 제도의 계층 간 소득재분배 기능이 마비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조적 결함”이라고 지적했다.

▽기초연금제가 대안인가=구조개혁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기초연금제는 노인인구가 400만 명이고 필요한 연금 총액이 연간 10조 원이라면 그 돈을 그해 경제활동 인구에게 세금으로 징수해 재원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더불어 지역가입자에게는 기초연금만 적용하고 소득비례연금은 임의 가입하도록 연금을 이원화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 제도는 기금 운용의 부담이 적고 사각지대가 없는 장점이 있으나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비판이 모아진다.

노인철(魯仁喆) 국민연금연구센터 원장은 “올해 노인 436만 명에게 월 20만 원씩 기초연금을 준다고 가정하면 연간 9조6000억 원이 필요한데 그 돈을 세금으로 징수하는 것은 무리”라면서 “이 같은 방식은 고령화 사회에 맞지 않아 ‘복지 천국’ 스웨덴에서조차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해법은 없나=정부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3년째 표류하고 있다.

권문일(權汶一)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캐나다에서는 1997년 국민의 동의를 얻어 보험료를 올리는 연금개혁을 단행했다”며 “장기 가입한 저소득자에게는 크레디트(일정기간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낸 것으로 인정해 주는 것)를 주어 연금 수준을 높여주고 노인복지 투자를 늘리는 등 불신 해소를 위한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금고갈 위기를 부풀리지 말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노인부양비의 적정 수준에 대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용하 교수는 “기초연금제를 도입하면 2050년경 150조 원의 재정부담이 있지만 그때 GDP는 3000조 원가량이 될 것”이라면서 “GDP의 5%로 인구의 38%에 달하는 노인을 부양하는 것은 합리적 수준”이라고 말했다. 서구유럽은 1990년대 후반부터 연금지출액이 GDP 대비 10% 안팎에 이르고 있다.

대통령직속 고령화와 미래사회위원회에서는 △현 제도 보완 △기초연금제 도입 △스웨덴식 수익자 부담원칙 도입 방안 등 3개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인철 원장은 “노후 보장을 국민연금에만 의존하는 것은 무리이며 공적연금과 기업연금 개인연금이 함께 운영되는 다층 체계 안에서 연금 개혁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근태(金槿泰) 보건복지부 장관은 16일 밤 KBS 심야토론에 출연해 “기초연금제를 포함한 개혁방안이 국회에서 제대로 토론된 적이 거의 없다”며 “이번 임시국회에 특위를 설치해 개혁방안을 공개 토론하자”고 제안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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