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막히고 걸리고…울고싶은 ‘걷고싶은 거리’

  • 입력 2005년 4월 20일 02시 27분


《“휠체어 타고 여길 다 다니면 이틀은 몸져누울 텐데요.”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배융호(裴隆昊) 정책실장과 관계자들은 ‘장애인 휠체어 체험’을 하려는 기자를 출발 전부터 말렸다. 휠체어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체험구간의 ‘장애물’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 체험구간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종로구청∼탑골공원∼돈화문로 약 2.5km. 최근 서울시가 지상 횡단보도를 설치한 세종로사거리와 ‘걷고 싶은 거리’ 시범구역으로 지정된 돈화문 앞길 등 보행자 중심의 거리를 위주로 구간을 정했다.》

19일 오후 3시 기자는 배 실장과 함께 각각 휠체어로 이 구간을 이동해 보기로 했다. 걸어서 40분 정도 걸리던 것이 3시간 반이 걸렸다.

최근 서울시가 ‘거리의 주인은 시민’이라며 조성한 세종로 사거리 주변의 인도는 넓고 깨끗했다. 특히 올해 3월 설치한 지상 횡단보도는 장애인들에겐 커다란 선물이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장애인을 진정으로 고려하지는 못했음을 체험을 통해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왕복 16차로의 긴 횡단구간을 고려해 행인들이 잠시 대기할 수 있도록 차로 중간에 설치한 ‘간이 섬’이 문제. 경사지게 만들기는 했지만 턱의 높이가 약 5cm인 데다가 거친 돌을 바닥에 심어 놓아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는 ‘도심 속의 오프로드(비포장도로)’였다.

배 실장은 “제대로 된 오프로드 체험은 돈화문 앞 ‘걷고 싶은 거리’에서 하자”고 말한다. 돈화문로의 인도와 골목길이 교차하는 곳은 모두 돌길로 만들어져 장애인의 이동을 제한하고 있었다.

그는 “그래도 사람이 다니는 곳에 우리가 갈 수 있도록 배려해 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종로구청을 돌아 종각앞 사거리로 가는 인도는 한 건물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량의 원활한 통행을 위해 높이 약 5cm의 턱으로 끊겨 있어 차도로 다녀야 한다.

장애인 편의증진법 시행령에는 건물 출입문과 인도의 턱 높이는 3cm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다.

종로1가에서 종로구청 쪽으로 들어서는 이면도로 입구에는 남북 방향으로 ‘길을 건너라’고 안내하는 시각장애인용 노란색 점자블록이 깔려 있었다. 서울시가 시청 앞에 서울광장을 조성하면서 종로1가 도로를 건너는 횡단보도를 없앴지만 점자블록은 그대로 놔둔 것. 이를 그대로 따라가면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로 들어서게 돼 위험천만이다.

장애인을 위해 설치했다지만 실제로는 도움이 안 되는 시설도 많았다.

종로구청에 설치된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는 건물 반 층 위에 있어 장애인 혼자서는 이용할 수 없었다.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공익근무요원을 불러야 한다. 별관 출입구의 경사로는 너무 가팔라 휠체어 접근이 매우 힘들었다.

탑골공원에 설치된 장애인용 화장실은 문이 안쪽으로 열리게 돼 있어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면 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휠체어를 타고는 음수대에서 물을 마실 수도 없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김동범(金東汎) 사무총장은 “관공서나 공공시설에서 만들어 놓은 장애인 주차공간은 제대로 규격을 지킨 곳이 드물다”며 “장애인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려면 외국처럼 장애인들이 시설 설치 과정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장애인위한 장애인의 공연 ‘감동 두배’▽

“오늘 공연은 우리가 비장애인에게 희망을 주는 자리입니다.”

14일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공연을 마친 지체부자유자 대중가수 박마루(42) 씨는 환호하는 1200여 명의 관중에게 이같이 말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양손에 손가락이 2개씩밖에 없는 선천적 사지기형 이희아(20·여) 씨의 피아노와 시각장애인 이상재(38) 씨의 클라리넷 연주에 맞춰 목발을 짚은 가수 박 씨와 테너 최승원(44) 씨가 독창 또는 합창을 했다. 이들은 공연 중간 중간에 어떻게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뤘는지를 이야기 형식으로 들려줘 관중의 박수를 받았다.교육인적자원부 후원으로 마련된 이날 행사는 장애를 극복한 음악인 4명이 전국순회공연에 나서는 첫날. 이들은 연말까지 전국의 중고교를 돌며 35회의 공연을 펼친다.

최근 이처럼 장애인이 주도하는 행사가 늘고 있다. 비장애인들의 공연을 지켜보기만 하던 수동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장애인 스스로가 직접 준비하고 참가하는 것.

16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개성마당’에서는 장애인 4명으로 구성된 브라스밴드의 공연이 열렸다.

20일에는 선광학교, 선명학교, 세광학교 등 광주 지역 장애인 특수학교 3곳의 학생들은 광주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풍물놀이, 태권도 시범, 사물놀이 등을 공연한다.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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