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소는 2, 3분간의 숨고르기와 7, 8초간의 격전을 반복했다. 이마에선 피가 흐르고, 입에선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육중한 목과 뱃살은 쉴 새 없이 꿀렁거렸다.
1시간 10분이 지났다. “빨리 끝내라”고 외치는 관중도 있었다. 기자도 내심 빨리 끝내주길 바라며 잠시 한눈을 팔았다.
순간, 둔탁한 충격음과 함성이 터졌다. 비호의 오른쪽 뿔이 승리의 오른쪽 목덜미 쪽을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서너 차례의 공방이 이어졌다. 비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승리를 밀어붙였다. 드디어 승리의 몸이 기우뚱하더니 엉덩이를 보인 채 도망치기 시작했다. 비호의 주인 송인기(宋仁基·49) 씨가 모래경기장으로 달려 나와 비호를 껴안은 채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경기 시작 1시간 12분 만이었다.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소싸움에 많은 도시인들이 열광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2005 서울 소싸움 대축제’(15일까지·입장료는 13세 이상 1만 원, 12세 이하 5000원. 문의 02-463-0888)가 개막된 뒤 매일 2000여 명의 관객이 찾고 있다.
이번 대회엔 전국의 을종 체급 100마리가 출전해 매일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10경기 정도씩 치른다. 매일 10∼20마리의 소가 상경했다가 경기를 마치면 귀향한다.
비호와 승리의 이날 대격돌은 승리 측이 도전장을 내면서 이뤄졌다. 최근 수년 동안 을종 체급을 석권해온 비호는 시가 2억 원. 주인 송 씨는 “비호가 거느리는 암컷이 50마리에 이른다”며 종족 보존의 생각에서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승리도 그동안 승승장구 행진을 이어온 기대주였다. 사실 승리도 원래 송 씨의 소였는데 지난해 가을 경남 의령군으로 팔려갔다. 송 씨는 “승리의 눈에 옛 주인을 다시 만난 반가움과 자신을 팔았다는 섭섭함이 겹쳐 있는 것 같았다”며 분패한 승리를 격려해줬다.
승리를 훈련시켜온 하정(河正·32) 씨의 표정도 밝았다. 하 씨는 “승리의 발목을 강화하기 위해 매일 6km씩 전력 질주 훈련을 해왔다”며 “훈련 8개월 만에 비호와 대등하게 싸워 대만족이다. 다음엔 이길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뿔과 머리, 어깨로 겨루는 소싸움은 겉보기엔 격렬하지만 실제로 소들이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소싸움 과정에서 소가 죽는 경우는 없고 대개의 부상은 주인의 극진한 간호 속에서 회복된다.
송 씨와 하 씨는 이날 밤, 경기장 옆에 마련된 우사(牛舍)에서 각각 비호와 승리를 돌보며 밤을 함께 보냈다. ‘정말 수고 많았다. 이눔아….’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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