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취임한 이경숙(李慶淑·62) 총장은 이듬해 “개교 100주년인 2006년까지 학교 규모를 두 배로 키우고 학교발전기금 1000억 원을 모으는 등 ‘제2 창학’을 이뤄내겠다”고 선언했었다. 그 약속은 어느 정도 실현됐을까. 이 총장을 만나 학교 발전 성과와 향후 청사진 등을 들어봤다.
1990년대 초반까지 숙대를 다녔던 동문들은 최근 학교를 방문하면 엄청나게 달라진 캠퍼스의 모습에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을 실감한다고 한다.
학교 정문에 상징처럼 우뚝 서 있는 행정관을 비롯해 약대, 100주년기념관 등이 들어선 맞은 편 ‘제2 창학 캠퍼스’ 전체가 사실상 최근 10여 년 동안 새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이 총장이 취임한 뒤 새로 들어선 건물은 17개동이고 6000여 평이던 캠퍼스는 1만8000평으로 넓어졌다.
이런 외형적 변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현모양처의 이미지로 인식되던 학교 분위기도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리더’를 기르는 요람으로 변했다.
이 총장은 “의기소침했던 학생들은 자신감과 생기가 넘치고 졸업생은 모교를 자랑스러워하며 교직원의 불평불만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변화하는 학교=취임 이듬해 이 총장은 “개교 100주년이 되는 2006년까지 세계적인 명문여대로 발돋움할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세계적 명문 여대의 벤치마킹에 나섰다.
이 총장은 “대략 1000억 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지만 재단이 없다보니 적자에 허덕일 만큼 가난했다”며 “학교 발전은 돈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우선 기금 마련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1995년 2월 ‘제2 창학 발기인 대회’를 열고 졸업생 2006명에게 ‘등록금 한 번 더 내기 운동’을 벌인 게 첫걸음이었다. 숙대 역사상 최고 기금모금액 2억 원을 훌쩍 뛰어 넘는 62억 원을 약정한 데 이어 4월 말까지 모금된 학교발전기금은 820억 원. 내년 5월까진 100% 목표 달성은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외형적 성장에 못지않은 변화는 학교 전반에 흐르는 긍정적 ‘기류’다.
이 총장은 “학교를 둘러보면 옛날처럼 부정적인 내용의 플래카드가 거의 없다”며 “학생, 교직원 누구나 문제가 있을 때는 대화와 토론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행정시스템을 간소화하고 전산화하는 등으로 업무 효율성을 높였고 학생 중심의 대학을 만들어 ‘고객 만족도 1위 대학’으로 3년 연속 뽑히기도 했다.
▽“여자도 리더” 자신감 교육=이 총장은 “명문여대가 되기 위해서는 외형적 성장뿐 아니라 ‘숙명인(淑明人)’으로서의 자긍심이 필수적”이라며 “여성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끊임없이 격려하면서 리더십 교육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숙대가 지향하는 여성 리더는 명령하고 군림하면서 ‘앞에서 이끄는 자’는 아니다. 수평적인 관계에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자’라는 것. 그래서 ‘섬김의 리더십’이라고 부른다.
이 총장은 “이제까지의 여성 리더들은 자기관리 능력은 뛰어났지만 대인관계에서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이끌어주는 힘이 부족했다”며 “21세기에는 여성의 섬세함과 포용력, 융화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리더십을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방황하기 쉬운 1학년 때 필수적으로 리더십 교양학부에서 읽기 쓰기 토론 등을 배우며 의사소통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했고 삶의 목표와 비전을 담은 ‘일대기’를 써보게 했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성화로 거듭난다”=숙대가 ‘세계적 명문’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채택한 전략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특성화 대학이다.
이 총장은 “국내 대학 최초로 교내에 무선 랜을 구축했고, 휴대전화로 수강신청을 할 수 있는 등 모바일 캠퍼스로 발전시켰다”며 “디지털 분야에서는 세계 1등이라는 자부심이 있고 앞으로도 이 분야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육성해야 할 분야로는 생명과학 분야의 기초 연구를 꼽았다. 의과대학이 없다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장은 “여대인 만큼 여성 질환에 대한 기초 연구에 주력할 수 있도록 약대와 생명과학대를 집중 지원할 것”이라며 “3월 여성질환연구센터를 열었고 임상실험을 위해 삼성의료원과 자매결연도 맺었다”고 말했다.
수석 입학과 수석 졸업으로 유명한 이 총장은 “학교에 늘 빚졌다는 생각으로 일해 왔다”며 “후배나 제자가 나보다 더 우수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체육관 음악홀 등을 갖춘 예술관을 짓기 위해 1000평의 땅을 확보했다는 이 총장은 아직도 후배를 위해 할 일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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