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범 후손 홍릉찾아 ‘눈물의 사죄’

  • 입력 2005년 5월 10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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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범의 외손자인 가와노 다쓰미 씨(오른쪽)가 10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명성황후와 고종의 합장묘인 홍릉을 찾아 고종의 아들인 의친왕의 9남 이충길 씨와 악수하며 고개 숙여 사죄하고 있다. 남양주=변영욱 기자
명성황후 시해범의 외손자인 가와노 다쓰미 씨(오른쪽)가 10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명성황후와 고종의 합장묘인 홍릉을 찾아 고종의 아들인 의친왕의 9남 이충길 씨와 악수하며 고개 숙여 사죄하고 있다. 남양주=변영욱 기자
“할아버지가 저지른 나쁜 짓에 대해 사죄합니다. 할아버지도 이런 저의 모습을 이해하실 겁니다.”

10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의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합장묘인 홍릉 앞 잔디밭에서는 일본인 가와노 다쓰미(河野龍巳·84) 씨와 이에이리 게이코(家入惠子·77·여) 씨가 홍릉을 향해 차를 올린 채 무릎을 꿇고 연방 고개를 땅에 조아리며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 내 명성황후 처소인 건청궁(乾淸宮) 옥호루(玉壺樓)에 난입해 황후를 시해했던 범인 45명 가운데 당시 한성신문 기자였던 구니토모 시게아키(國友重章)의 외손자와 이에이리 가키치(家入嘉吉)의 손자며느리. 이들은 각각 외할아버지와 시할아버지를 대신해 한국민에게 사과하기 위해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 10명과 함께 9일 입국했다.

이들이 사죄의 다례를 지내는 동안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는 고종의 아들 의친왕(義親王)의 9남인 이충길(李忠吉·황실명 갑·鉀·67) 씨가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 이날 인근 영원(英園·영친왕 묘역)에서 열린 영친왕(英親王·고종의 아들) 제사에 참석했다가 이들의 방문 소식을 듣고 홍릉을 찾았다는 이 씨는 “굳이 못 만날 것이 있겠느냐는 생각에 왔지만 황실의 뼈저린 역사를 잊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일본 정부가 사죄한다면 모르지만, 이들의 인사나 사죄를 받을 수는 없다”며 이들과 악수만 한 채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가와노 씨는 “이런 기회를 가진 것을 감사히 여길 뿐”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방한을 이끌어 낸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은 지난해 말 일본 구마모토(熊本) 현 출신의 양심적인 퇴직 역사교사 20여 명이 결성한 모임. 이들은 한일관계사를 연구하다가 명성황후 시해범 45명 가운데 21명이 구마모토 현 출신이라는 점을 알고는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해 모임을 만든 뒤 시해범 후손을 찾아내 이번 사죄 방한을 성사시켰다.

남양주=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명성황후 외손 LA서 피격사망▼

명성황후의 외가쪽 후손인 재미동포 체스터 클래런스 장(26·샌타모니카 거주) 씨가 7일(현지 시간) 오전 2시 50분경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상가에서 싸움을 말리다 총격을 받고 현장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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