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정치화돼 근로자 대표성 퇴색”

  • 입력 2005년 5월 14일 03시 12분


재벌기업만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노동조합의 지배구조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보고서가 잇달아 나왔다.

이런 지배구조의 결함 때문에 주인을 대신해 일하는 대리인(代理人)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져 주인의 이익을 도외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노동연구원 배규식(裵圭植) 연구위원은 5월호 노동브리프에 실린 ‘노동조합 지배구조의 위기’라는 보고서에서 “최근 노조의 비리와 부패, 비정규직 노동자 외면 등의 문제는 전체 노조의 지배구조가 잘못돼 노조 지도부가 내부자의 이익만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경제연구원 김현의(金玄儀) 금융연구팀장은 ‘금융시장에서 도덕적 해이와 정책과제’라는 보고서에서 “신용카드 대출 부실화는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고위직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노조집행부 강경노선 치달아

배 연구위원은 현재의 노조 문화를 ‘절차적 민주주의만 이룬 원시적 민주주의’ 상태라고 평가했다.

노조 임원선거가 너무 정치화돼 분파주의가 심하고 임원 후보들은 경쟁적으로 노조원의 단기적 이익만 추구하는 공약을 내세운다는 것. 이렇게 출범한 노조 집행부는 강경노선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배 연구위원은 “노조가 전체 근로자에 대한 대표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업별 노조체계로 인해 비정규직이나 실업자를 배제한 채 정규직의 이익만 추구한다는 것.

그는 “기업별로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노동조합의 문호를 개방하는 것부터 시작해 업종, 지역, 산업별로 노동조합의 조직구조를 개편함으로써 노조가 전체 근로자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조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수용될 수 있도록 시민자문회의 성격의 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노조 집행부를 감독하고 견제하는 회계감사 제도가 있지만 기아자동차 노조 등 각종 비리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자문회의는 노조에 대한 사회의 비판과 주문을 전달해 주는 통로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배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 경제 관료들 눈앞 성과만 집착

김 팀장은 신용카드대출 부실화를 부른 1999년 5월 신용카드 관련규제 완화조치는 고위 경제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고위 경제 관료들이 ‘재임기간 눈에 보이는 성과’라는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느라 ‘안정적이며 장기적 성장’이라는 주인(국민)의 이익을 외면했다는 것. 이는 결국 신용카드 사태와 내수침체를 불러왔다.

금융감독위원회도 2001년부터 신용카드 부실 징후가 나타났지만 내수 진작을 중시하던 재정경제부에 밀려 신용카드회사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다.

김 팀장은 고위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보상체계 등을 바꿀 것을 제안했다. 단기 실적 추구를 막기 위해 재임기간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정치적 중립성을 가진 기관이 고위 관료가 주인(국민)의 복리에 기여한 정도를 평가해 언론에 공개할 것을 제안했다. 성과급도 이 평가에 따라 지급해야 한다는 것.

김 팀장은 고위 관료가 정치권이나 대통령의 평가만 의식하면 국민의 복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도 했다.

또 영국이나 일본처럼 실적이 탁월한 정책결정자에게는 훈장 등으로 명예를 높여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려면 남발되는 국가 서훈제도부터 개혁하는 것이 선행 조건이다.

이병기 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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