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랭킹 발표는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고 대학이 학생과 기업 등 수요자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랭킹 발표가 교육의 질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증거는 확실치 않다.
랭킹에 의한 대학 평가의 근원적인 문제는 학교의 질을 잴 수 있는 한 가지 잣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100m 달리기나 기업의 시장 점유율에는 명확한 등수가 있으나 다양한 특성을 가지는 대학을 한 가지 잣대로 등수를 매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생들의 입학 성적, 교수 대 학생 비율, 학비, 취업률, 졸업생의 초봉, 연구 실적 등을 개별적으로 비교할 수는 있으나 이를 종합할 때는 각 평가 항목에 인위적인 가중치를 부여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 오류가 내재되어 있다.
▼명성에 좌우되는 인기투표▼
더욱 심각한 문제는 비교를 위한 기초 자료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고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수 대 학생 비율을 전임직 교수 대 전일제 학생 비율로 국한할지, 교수의 연구실적은 어떤 저널에 실린 것까지를 인정할지, 학교 전체의 논문 총량과 교수 1인당 실적 중 어느 것이 의미가 있는지 등이 정비되어 있지 않다. 구체적인 사실 자료와 함께 활용되는 동료 전문가 평가(peer review)의 경우에도 학교의 새로운 혁신 노력이나 질적 향상을 알지 못하고 과거 명성에 의한 인기투표로 되는 경향이어서 기존 서열화를 고착시키고 있다.
통계적 신뢰성의 문제와 함께 더욱 문제시되는 것은 각 랭킹 평가 기관들마다 다양한 자료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평가 대상인 대학이 자료를 유리하게 ‘분식’할 수도 있어 자료의 신빙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대학 랭킹 평가 결과는 궁극적으로 학교의 질을 높이는 데에 역행할 가능성이 더 크다.
경영대의 경우 전일제 경영대학원(MBA) 프로그램 위주의 평가에서 랭킹을 높이기 위해 많은 학교에서 학사 과정과 박사 과정을 축소하고 취업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외국인 학생의 입학을 대폭 줄이는 반면 평가에서 제외된 야간 과정은 늘리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얼핏 평가의 모든 것을 한번에 시원하게 풀어 줄 것 같은 랭킹에 대한 이상 과열은 학교로 하여금 근본적인 질의 향상보다는 겉으로 ‘어떻게 하면 더 좋게 보일까’에 신경 쓰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작년 미국의 하버드대와 워튼경영대가 랭킹 평가에 대한 협력을 중지하였고, 아시아에서도 한 동남아 언론사에 의해 신뢰성이 낮은 방법으로 시도된 아시아 경영대 랭킹 조사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홍콩과기대 경영대가 주도하여 보이콧한 바 있다.
AACSB 보고서에서도 지적되었듯이 대학 평가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되고 검증된 자료의 공공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다양성을 감안한 평가 모델의 지속적인 연구 개발이 필요하다. 또한 기업이나 국가의 신용을 평가하는 세계적 기관들이 수많은 변수를 고려하는 최선의 방식으로 등급 시스템을 채택한 것과 마찬가지로 대학 평가도 랭킹으로부터 특성별 등급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특성별 평가로 전환해야▼
우리나라에서도 금년 초 대학교육협의회에서 대학 순위를 발표하여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고 앞으로도 정부와 관련 단체들이 대학평가를 계획하고 있다. 평가는 개인이든 학교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그러나 잘못된 평가는 오히려 발전을 크게 후퇴시킨다. 대학의 궁극적인 성공은 무분별한 랭킹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수, 학생, 졸업생들의 업적에 따라 좌우되며 이를 위한 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이 중요한 때다.
박성주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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