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사건들은 권위주의시대 이래 소수의 노조 간부들에 의한 의사결정 독점, 조합비의 임의적 사용 등 잘못된 관행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전체 노조 중 예산 운용과 관련해 부정이나 횡령 등으로 노조 집행부가 불신임을 당하거나 자진사퇴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8.6%에 이른다. 이는 노조 내부의 비리가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 구조적이고 누적된 문제라는 사실임을 알려주는 통계수치다.
▼소수 간부 노조권력 남용▼
노조 간부들의 부정과 비리는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고용불안이 커지며 차별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쟁점이 된 상황에서 노조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다수의 노동자에게 배신감과 분노를 낳게 했다.
기업이 주주 임원 직원 지역사회 등과 일정한 관계를 맺는 가운데 의사결정과 집행이 이뤄지고 그 책임을 묻는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를 갖추고 있는 것처럼 노조도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 올바로 작동하도록 ‘노조지배구조(union governance)’를 갖춰야 한다. 지금도 노조에는 일반 노조원을 대표하는 대의원 제도와 재정적으로 노조 집행부와 독립해 운영하는 회계감사 제도를 둬 집행부 활동을 감시하고 견제하도록 하고 있으나 잇따른 노조 간부들의 비리와 부정은 이러한 감시와 견제 시스템이 무력했음을 입증했다.
특히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를 물리력으로 무산시킨 한 분파는 “의사결정을 위한 표결 등 절차를 ‘부르주아 민주주의 절차’일 뿐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는 아니다”는 독선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노조 내부의 민주주의와 관련한 핵심적 문제를 야기시켰다.
노조의 부정과 비리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려면 우선 회계감사제도 강화를 통한 노조 재정의 투명화가 필요하다. 노조 예산규모와 비례해 회계감사의 수를 늘리고 노조 재정의 유용이나 횡령이 드러나면 회계감사들에게도 손해배상의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회계감사제도 강화는 양대 노총이 주도해 노조 규약을 개편하는 게 바람직하다.
노조 비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외부의 개입, 특히 국가의 개입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노조의 회계문제에 정부나 외부가 직접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외국에서도 외부 개입은 예외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스스로 회계부정이나 조직적인 비리를 막거나 개선하지 못한다면 정부나 외부의 개입을 불러올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트럭운전사조합(Teamsters)’의 부패가 국가의 개입을 불러왔었다.
▼회계감사제도 강화 시급▼
회계감사제도 강화 외에도 노조활동 전반에 대한 여론을 수렴할 수 있도록 시민자문회의 등의 채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등은 고객의 비판과 의견을 수렴하는 장치를 갖춘 지 오래다. 노조도 외부 비판과 주문에 귀를 열어야 한다. 외부 비판에 대해 무시나 강변으로 대응하는 행태에서 벗어남으로써 스스로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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