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동서남북/5·18 광주의 씁쓸한 시위

  • 입력 2005년 5월 16일 19시 20분


5·18 민주화운동 제25주년을 앞두고 광주에 배치된 주한미군의 패트리엇 미사일이 다시 뜨거운 현안으로 떠올랐다.

전국에서 모인 재야단체 회원 및 대학생 근로자 등 3000여 명이 15일 패트리엇이 배치된 광주공항(공군 제1전투비행단)에 몰려가 격렬한 시위를 벌임으로써 촉발됐다.

이날 시위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5000여 명이 모일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지만 ‘인간 띠 잇기’가 상징하듯 대부분 행사가 평화적 모양새를 갖춰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경찰이 예상 시위참가 인원에 훨씬 못 미치는 15개 중대 2000여 명만을 현장에 내 보낸 사실로 미뤄 볼 때 심각한 충돌을 예상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 집회 참가자들이 2시간에 걸쳐 공군기지 주변에 둘러쳐진 경계용 철조망 울타리를 1km 가까이 뜯어내고 기지에 들어가려고 시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며칠 전 국방부는 5·18 관련 단체에 장관 명의의 서한을 보내 “이번 행사 기간 중 우리 군 장병의 사기를 저하시키거나 주한미군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드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었다. 이에 대해 행사주최 측은 “5·18 25주년을 맞아 광주를 찾은 전국 순례단과 광주시민이 함께 참여해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평화시위’를 공언했지만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한 셈이 됐다.

시위대와 경찰, 군 병력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격렬한 공방전을 벌이는 장면은 텔레비전 뉴스와 16일자 조간신문에 나왔다.

유혈 비극이 일어난 지 25년이 지났지만 “광주는 지금도 몽둥이와 최루탄이 난무하는 난장판 도시”라는 인식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광주의 한 조간신문은 1면 머릿기사로 ‘5·18 추모분위기 망친다’는 제목을 뽑아 이날 시위를 정면으로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시위는 ‘한판 붙어 보자’ 식으로 몰려오는 타 지역 시위꾼을 더 이상 ‘추모’의 이름으로 반길 수 없다는 미묘한 ‘광주정서’를 확인한 사건으로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

김 권 기자 goqu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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