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은 백지 위에 그어진 선이 아니다. 8만3000개의 사업체, 38만 명의 종사자, 서울 경제활동의 10∼11%가 청계천 연변에 집적돼 그 공간을 매개로 삶을 꾸려 간다. 그래서 청계천 ‘복원’사업은 청계천에 물을 흘리는 것으로 끝나는 정형수술이 아니다. 원하건 원치 않건 그것은 연변에 큰 변화를 강요하는 심각한 동맥수술이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주변의 땅값과 임대료를 올린다. 개발차익에 대한 기대가 커져 개발 압력도 거세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땅은 영세해서 개발 압력은 재개발 사업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재개발 사업은 자본 비용과 리스크가 큰 사업이므로 사업자는 단기 회수가 쉬운 주상복합을 선호한다. 수익성을 키우려고 용적률, 층고 등 도시계획 완화에도 매달리게 된다. 개발사업자의 이익과 도시계획의 목적이 상충하게 되는 것이다.
▼청계천 복원 개발붐 부추겨▼
서울시의 도심부 비전은 호화롭다. 국제 컨벤션 센터, 특급 호텔, 고소득층과 장기 투숙 외국인을 위한 고급 아파트, 엔터테인먼트 센터 등 고층 건물을 청계천 연변에 지어 남산과 복원된 하천, 고궁을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재개발사업은 촉진돼야 했고, 그래서 모처럼 마련했던 ‘도심부 관리계획’도 고쳤다. 높이 규제를 완화했고 ‘도심 공동화(空洞化)’를 막는다는 구실로 용도용적제를 폐지했다.
위험한 발상이다. 이런 식의 재개발은 기왕에 이 지역에서 번성해 온 중소사업체의 존립에 위협이 된다. 재개발 과정에서 기존 사업체를 흡수한다고 하지만 높아진 임대료, 변화한 사업 환경 때문에 공염불에 그치기 쉽다. 도심 활성화를 위해 잘 돌아가고 있던 경제 공간을 파괴하는 것은 경제림 만든다고 문전옥답 파헤치는 것만큼이나 허황된 일이다.
대규모 개발로 강북을 강남처럼 만들겠다는 구상 또한 잘못이다. 강북의 미래는 강북의 고유한 자연과 600년 역사의 흔적을 잘 활용하는 데에 있다. 개발업자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강북의 고유한 정체성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지난날 강북을 고사시킨 채 강남에서 재미 보던 개발 자본이, 개발 여지가 소진되자 다시 강북에 판을 벌이도록 조장하는 것은 옳은 도시정책이 아니다.
고삐 풀린 개발주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조장한다. 물론 도심 공동화는 피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 고소득자 위주로 도심을 개조해야 한다는 논리는 비약이다. 시장 논리에 의존해 ‘도심 소생’ 사업을 펼친 선진 도시들의 사례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중간소득층의 터전이 무너지고 고소득층과 저소득층만 커진 ‘2원 도시’가 그 결과다.
과잉 건설로 인한 부동산시장 교란도 걱정거리다. 그렇지 않아도 ‘뉴 타운’ 건설, 행정복합도시 건설에 따른 관청 이전 등으로 오피스 건물은 넘쳐날 판이다. 부동산시장의 교란은 그대로 경제 혼란으로 이어진다. 개발회사는 이익을 보고 빠져나가면 그만이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시민에게 온다.
▼주변 중소사업체 존립 위협▼
서울시는 제어장치도 마련하지 않은 채 무분별한 개발 붐을 조장할 뇌관을 터뜨렸다. 개발 압력을 적절하게 풀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모처럼 시작한 청계천 사업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정경야합의 소지는 계속 남게 된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조화로운 도심 발전을 위한 개발 인프라의 구축에 남은 시간을 쓰기 바란다. 물리적인 재개발 사업의 촉진이 아니라 이 지역의 사업자와 지주가 자율적으로, 주체적으로 자신의 터전을 갱생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조성하라는 말이다. 그 단초는 당초의 ‘도심부 관리계획’에 다 들어 있다. ‘생명 회생’의 화려한 구호에 속아, 혹은 이해타산에 따라 본질을 외면했던 정치권, 언론, 시민단체, 전문가들도 이제 핵심 과제에 감시의 눈을 돌릴 때다.
강홍빈 객원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교수·도시계획학 hbkang@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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