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들과 교육인적자원부의 마찰을 바라보는 다른 대학교수들은 “배경(背景·ground)과 전경(前景·figure)을 함께 조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경이 노무현(盧武鉉) 정부 들어 펼쳐지고 있는 ‘권력이동(Power Shift)’으로 인한 갈등과 엘리트주의 대 평등주의라는 세계관의 충돌이라면, 전경은 교육 정책에 대한 국가 개입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이라는 얘기다.
▽권력 이동이 초래한 갈등?=참여정부 출범 이후 권력 이동 현상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인 박길성(朴吉聲·사회학) 고려대 교수는 현 사태를 2가지 축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노무현 정부의 주류 교체 작업에 대한 집단적 반발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상황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대가 시대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고 있느냐는 서울대 책임론의 관점이다.
박 교수는 “서울대가 언론, 사법부, 강남, 삼성그룹과 함께 노무현 정부의 5대 개혁 대상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공공연한 반감의 대상이 되어 온 ‘상황적 진실’도 있지만, 과거 개발시대와 오늘날 탈권위주의시대 서울대의 역할 수행에 대한 객관적 평가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상인(全相仁·사회학) 한림대 교수는 “현 정부의 특징은 대학교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반면 서울대 교수들의 참여율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라며 서울대 교수들의 소외감이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여러 ‘개혁 대상’ 가운데) 서울대가 계속해서 강도 높은 비판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권력에 잘 보여야 할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다는 점과 가장 자부심이 높은 집단이라는 점에 기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장사’를 해야 하는 재벌이나 불특정 지역 단위인 강남, 그리고 같은 국가기관으로서 정부와 첨예한 갈등을 지속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 사법부와는 처지가 다르다는 것.
반면 강원택(康元澤·정치학) 숭실대 교수는 “이정우(李廷雨)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도 지방대 교수출신이지만 서울대 졸업생”이라며 “서울대 출신들이 정관계 엘리트직을 독점함으로써 서울대의 사회적 위상과 권위가 재생산되는 구조에 대해서는 서울대 교수들부터가 반대해왔다”고 지적했다.
▽서울대와 정부의 동상이몽(同床異夢)=전 교수는 교육 시장의 세계화 속에 서울대의 생존 몸부림과 국민의 표심(票心)을 고려한 정부의 정책 수단 간의 괴리를 특히 주목했다.
전 교수는 “서울대로서는 교육 시장 개방으로 똑똑한 인재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우수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반면 정부는 교육평준화 정책을 유지함으로써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한편 교육 과열 현상으로 인한 부동산 문제까지 해소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 자율의 원칙 대 국가 개입의 문제=학자들은 현재 전개되고 있는 구체적 교육 정책을 둘러싼 서울대와 교육부 간의 논란 자체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즉 신입생 선발과 총장 선출에 있어서 대학의 자율권을 주장하는 서울대와 이에 대한 국가 개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정부 견해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대부분의 학자는 서울대 측 편에 섰다. 정부가 대학의 자율권을 무시하고 입시 정책이나 총장 선출문제에 간여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총장 선거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개입시키겠다는 발상은 국가가 모든 선거과정에 끼어들겠다는 ‘난센스’라는 비판이 대다수였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서울대 교수들 시각▼
서울대 내에서는 최근 두드러지게 불거지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와의 갈등에 대해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된 일이었다는 반응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집권 전부터 ‘서울대 죽이기’에 앞장섰던 사람 아니냐”며 “특히 서울대의 반발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련의 정책들이 강행되는 것을 보면 정부 각료들 사이에 여전히 그 같은 정서가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 교수들은 특히 최근 정부가 서울대의 도덕성을 문제 삼으며 자존심을 건드린 것을 불쾌해 했다.
공대 이승종(李昇鍾) 교수는 “한 대학 안에서도 단과대별로 다양한 정책을 구사하는데 획일화된 정책으로 대학을 모두 통제하려는 것은 무리”라며 “특히 이를 총괄하는 교육 수장들이 너무 단명해 그나마 일관성마저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회대의 한 교수는 “대학 내에서는 오래전부터 서울대가 국립대라는 이유로 정부의 지나친 간섭에도 의견 개진을 자유롭게 못하는 게 아니냐는 자조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총장 선거를 간선제로 바꾸라거나 선거관리위원회를 개입시키겠다는 등의 발상이 나오자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종섭(李鍾燮) 입학관리본부장은 “서울대가 입시 비리나 고교등급제 등의 검열에 한번도 연루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입시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애썼기 때문”이라며 “대학의 최소 존재 목적인 우수학생 유치를 위한 자율적 입시 다양화를 통제하겠다는 발상에 회의감마저 든다”고 말했다.
일련의 정부 정책이나 인사가 서울대 교수들의 소외감을 더욱 자극해 내부적인 결집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이전 정부의 고위 관료를 지낸 한 행정대학원 교수는 “수치상으로는 현 정부에서도 많은 관료들이 서울대 출신인 것으로 나타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최고 의사 결정 과정이나 정책 입안 과정에서 배제돼 있다”며 “서울대 교수가 이른바 ‘얼굴마담’이나 구색 갖추기 정도로 현 정부에 참여하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고 학교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제학부의 한 교수는 “현 정부가 정권 획득의 방법으로 소외계층의 감정을 자극하는 포퓰리즘을 이용했듯이 이른바 ‘5대 척결 기득권’ 중의 하나로 지목한 서울대를 길들이기 위해 또다시 이를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양성, 자율성을 기조로 하는 현 정부 정책 중 유독 교육정책은 획일성, 강제성을 구사하는 것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태수(李泰秀) 대학원장은 “그동안 서울대가 거의 모든 사회 분야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대학 이기주의, 파벌 조성에 일조했다는 사실은 반성해야 한다”며 “이런 변화의 시기에는 사안별로 끼리끼리 결속해 대립하기보다는 교육의 미래,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거대 담론으로 풀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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