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출신에서 비(非)서울대 출신으로=서울대와 권력 핵심부의 갈등은 현 정부 출범과 함께 본격화한 반(反)서울대 정서, 서울대 폐지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사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노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 후보 시절에 “서울대는 없애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에 이례적으로 서울대 교수는 단 1명만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런 기류는 2004년 모든 국립대를 통합하자는 서울대 폐지론의 본격 거론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반서울대 정서와 서울대 폐지론은 서울대 출신들이 한국 사회의 권력을 독점해 배타적인 기득권을 형성해 왔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서울대 출신 중심의 기득권층과 엘리트주의를 해체해야만 한국 사회가 평등해질 수 있다는 것이 현 정부 핵심 인사들의 생각인 셈이다.
이런 인식을 바탕에 깐 비서울대 세력이 서울대 중심의 기존 세력을 밀어내고 권력에 새롭게 진입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갈등은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사회 주류 세력이 좀 더 다양화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일도 아니다.
그러나 서울대 출신에서 비서울대 출신으로의 이동은 단지 사람의 변화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한국호(韓國號)’의 방향을 좌우할 조타수를 바꾸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심대하다.
▽신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충돌=서울대와 정부 여당 간 갈등의 이념적 바탕에는 자유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가치관과 정부의 개입으로 평등을 추구하려는 평등주의 가치관의 대립이 깔려 있다.
현재 서울대는 대학의 자율성과 무한 경쟁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시장경제 논리 속에서 서울대의 국제적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선 입시제도나 총장 선출에 철저한 자율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유 경쟁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반면 정부는 서울대의 국제적 경쟁력과 국제적 위상이 높아질수록 서울대 세력의 기득권만 확대 재생산될 것이기 때문에 용인할 수 없다는 방침이다. 대학과 사회의 형평을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등주의 가치관을 강조하는 견해다.
양측의 이 같은 견해는 세계를 바라보는 가치관에서도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 준다. 김호기(金晧起·사회학) 연세대 교수는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력 강화’와 ‘형평’의 두 가치가 충돌하고 신자유주의자 그룹과 평등주의자 그룹이 충돌하게 된다”면서 “이번 갈등도 이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집단 간의 갈등에는 이처럼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중첩되어 있다. 따라서 해결책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 교수는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서울대와 정부가 합의점을 찾기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이기홍 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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