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 릴레이 인터뷰]<1>클라우스 오페 獨 훔볼트大 교수

  • 입력 2005년 5월 23일 07시 23분


클라우스 오페 교수 - 권주훈 기자
클라우스 오페 교수 - 권주훈 기자
독일의 정치사회학자 클라우스 오페(65) 베를린 훔볼트대 교수를 2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만났다. 위르겐 하버마스의 조교로 ‘프랑크푸르트학파’ 3세대의 대표적 학자로 꼽히는 오페 교수는 유럽에서는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나 독일의 울리히 벡에 비견되는 이론가. 오페 교수는 23일 고려대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사회분과회의에서 ‘민주화 이후 전환기적 정의(Transitional Justice)’로 강연한다.

1970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국가와 자본의 관계를 규명한 ‘국가론 논쟁’의 주요 논객이었고, 독일 통일 이후에는 ‘전환기적 정의’ 문제에 천착해 온 그로부터 과거사 정리, 통일방안 등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 진실 규명은 ‘이해’와 ‘설명’이 중요

1988년과 1997년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을 찾은 오페 교수는 “과거사를 둘러싼 한국 내부의 갈등은 평화적 민주화가 이뤄진 세계 모든 나라의 공통 화두”라며 말문을 열었다.

“민주화 이후의 전환기적 정의란 권위주의 체제에서 벌어졌던 인권 침해와 권력 남용 현상에 대한 단죄, 제도적 장치 마련, 진실 규명의 3가지로 이뤄진다. 이러한 작업은 민주화가 전쟁이나 혁명을 통해 이뤄질 경우 쉽게 해결되지만 한국처럼 평화적으로 달성될 경우 항상 논쟁을 낳는다.”

오페 교수는 전환기적 정의를 구성하는 3대 요소 중 간과하기 쉬운 것이 진실 규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진실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목표”라고 전제하고 “진실을 찾는 것(finding) 못지않게 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understanding)와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설명(explanation)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진실 규명은 사법적 조사, 소설화와 영화화 같은 예술적 작업, 역사학자의 연구 등 다양한 접근을 통해 ‘기억의 퍼즐 맞추기’와 같은 종합적이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1974년까지만 해도 전 세계 30% 미만의 국가만이 자유민주정으로 분류됐으나 지금은 60%에 이른다는 점에서 ‘자유민주주의 승리의 시대’임이 분명하지만 그 민주주의가 좌우를 막론하고 포퓰리즘의 위기에 봉착했다”고 지적했다.

오페 교수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정부가 좌파 포퓰리즘 정권이라면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우파 포퓰리즘 정권”이라며 민주화 이후 포퓰리즘의 함정을 경고했다.

○ ‘시장의 실패’는 초(超)국가 조직을 통해 보완해야

오페 교수는 24일 열리는 제6차 정부혁신포럼에 참석해 기조강연을 하고 25일에는 서울대에서 열리는 한국이론사회학회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공동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해 ‘세계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변화’를 주제로 발표한다.

오페 교수는 “‘작고 강한 정부’라는 신(新)자유주의적 국가관은 자기 파괴적 위험성을 갖춘 시장을 감시하고 그 단점을 보완할 국가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라면서 “국가의 시장 감시와 보완의 역할을 축소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세계화로 인해 정부의 이런 권한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유럽연합(EU)이나 국제노동기구(ILO)와 같은 초국가조직의 강화를 통해 이를 보완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선 “개별 전문분야에서 국가와 시장에 대한 감시와 경고에 머물러야 하며 정부나 초국가조직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없고 대신하려 해서도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 “통일은 늦을수록 더 좋다”

오페 교수는 “독일 통일은 너무 갑작스럽고 빨리 이뤄졌기 때문에 동서독 모두에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면서 “한국도 이제 통일은 늦을수록 좋다(The Slower, the Better)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그는 최근 남북관계에 대해 ‘남한의 일방적인 퍼주기’라는 비판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남북 간 대화가 정치적 여흥이 돼서는 안 된다”며 “과거 동서독 간 대화는 상호 안보불안을 줄이고, 상호이익을 증진시킨다는 조건이 충족됐을 때 이뤄졌다”고 말했다.

오페 교수는 또 “서독 정부가 통일과정에서 동독의 반체제세력을 무시하고 동독 정부와 대화를 추진한 것이 통일 이후 ‘전환기적 정의’ 문제로 대두됐다”며 “한국도 남한 정부와 북한 정부 간 대화의 필요성 때문에 북한 인권문제를 외면한다면 통일 이후 같은 문제에 직면할 수 있으므로 슬기로운 대처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클라우스 오페 교수 약력:

△1940년 독일 출생

△1968년 프랑크푸르트대 사회학 박사

△1975∼1988년 빌레펠트대 정치학·사회학 교수

△1989∼1995년 브레멘대 정치학·사회학 교수 겸 사회연구센터 부소장

△1998∼2002년 국제사회학회 집행위원

△1995년∼현재 훔볼트대 정치학 교수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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