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학교 재건은 엄두를 못내는 상황에서 주민들이 나섰다. 경제력이 있는 일부 상인을 중심으로 학교설립위원회가 결성됐고 순식간에 수백 명이 넘는 후원자가 몰렸다.
학교 설립을 주도했던 귀랄 메흐멧 씨는 “많은 기부자들이 집 없이 텐트 생활을 하면서도 학교 설립에 앞장서 1년 만에 학교를 완공했다”고 회고했다.
이스탄불의 페티 초중학교도 지역의 상공인들이 뜻을 모아 지난해 함께 설립한 신설 사립학교다. 시장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상인과 해외 무역을 하는 기업인 등 15명이 주축이 됐고 1000여 명이 힘을 보탰다.
○ 공립학교보다 교육 질 높아
페티 초중학교 알리 딜리타트 교장은 “수업은 하루에 8시간이지만 교사들이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아 학생들과 함께 공부도 하고 상담도 한다”며 “교육의 질이 공립학교보다 우수해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처럼 뜻있는 인사들이 힘을 모아 세운 ‘대안 사립학교’는 터키 전국에 350여 개에 달한다. 1980년대 초 시작된 대안 사립학교 건립운동은 공립학교에 대한 불만과 부유층 위주의 ‘귀족 사립학교’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
터키 전국의 초중고교는 모두 4만 여 개. 이 가운데 대안 사립학교를 포함한 사립학교가 1200여 개이고 나머지는 모두 공립학교다.
공립학교는 학급당 학생 수가 40명을 훌쩍 넘는 등 열악한 수준이다. 반면 일반 사립학교는 연간 수업료가 3000만 원에 달해 서민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말 그대로 부유층만을 위한 ‘귀족학교’다.
대안 사립학교의 학비는 학교에 따라 연간 500만∼1000만 원 선. 형편이 어려운 학생 20∼30%는 장학금으로 공부를 한다. 우수한 학생은 교사들이 직접 찾아가 입학을 설득하기도 한다.
![]() |
터키의 대안 사립학교 운동가인 메흐멧 알리 씨는 “대안 사립학교의 등장 이후 국제 과학올림피아드에서 터키 학생들이 상을 받기 시작했다”며 “이들 학교의 성공은 공립학교에도 자극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인 앙카라에 있는 대안 사립학교인 사만욜루 과학고의 경우 매년 100만 여 명의 중학교 졸업생 가운데 상위 1000명 안에 드는 학생이 입학한다. 지난해 터키 국내에서 개최된 과학올림피아드 수상자의 37%가 이 학교 재학생이었다.
이스탄불의 명문 대안 사립 과학고인 파티 고교는 터키의 대학선발시험 수석을 5년 연속 배출하기도 했다.
1984년 설립돼 지난해 새 교사(校舍)를 마련한 이 학교는 각종 실험실습실은 물론 수영장과 영화상영관, 체육관 등을 갖추고 있다.
터키 정부도 대안 사립학교의 설립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행사해 온 사립학교 설립 인가권을 지방교육청으로 이양해 설립 절차를 단순화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국회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터키 정부는 이를 통해 현재 2.8%인 사립학교 수를 내년 5%, 5년 안에 20%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 한국에도 터키학교 설립 계획
케말 타샤르 터키 교육부 부장관 겸 사립학교 담당 국장은 “대안 사립학교의 성공으로 정부는 공립학교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 요코하마 등 세계 각지에 터키 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터키의 교육 운동가들은 한국에도 터키 학교를 설립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스탄불 플로리아 지역의 기업인으로 구성된 ‘파이아데르’ 재단의 아멧 자트 상임이사는 “해외에 학교를 세우는 것은 해당 국가에 대한 봉사 목적과 함께 이를 통해 그 나라의 장점을 수용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스탄불·앙카라·볼루=홍성철 기자 sungchul@donga.com
터키 학교후원자 팔란즈씨
![]() |
16일 페티 학교를 방문한 뒤 상점 사무실로 찾아갔을 때 그는 다짜고짜 “학교가 어떻더냐”고 물었다. 기자가 “훌륭하다”고 대답하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듯 했다.
상인이 왜 교육에 투자하느냐고 묻자 그는 터키의 전통적인 기부 문화를 설명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터키에서는 500년 넘는 전통을 가진 ‘바키프’(VAKIF·재단(Foundation)이라는 뜻)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
경제력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재단을 결성해 병원 등 서민 생활에 필요한 시설을 짓는 방식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바키프’ 문화는 자연스럽게 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팔란즈 씨는 “학교를 후원하는 것은 사회에 부를 되돌려 주기 위한 것”이라며 “공부를 잘하는 학생보다는 예의바르고 도덕적이며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인재를 기르고 싶다”고 말했다.
터키 교육 후원자들의 특징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후원활동에도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팔란즈 씨도 최근 지진 피해를 당한 인도네시아 아체 주를 다녀왔다. 무너진 학교를 재건하는 사업을 돕기 위해서다. 학교 부지를 물색하고 귀국해 현재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 강남역 인근 터키 전문 음식점인 ‘파샤’를 운영하는 을마즈 카라고줄루 씨가 그의 사촌동생이다.
이스탄불=홍성철 기자 sungchul@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