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하게 끝난 ‘실세들의 드라마’

  • 입력 2005년 6월 3일 03시 07분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를 둘러싼 의혹은 50여 일간 이어진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에서도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았다.

화려한 ‘배우’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결국 ‘감독 없는 드라마’로 끝난 셈. 일각에선 “애초부터 정치권 배후설의 실체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사건 전말=검찰 수사 결과는 이번 사건이 한마디로 정치권의 지원을 의식한 김세호(金世浩·사건 당시 철도청장·구속기소) 전 건설교통부 차관의 개인적 공명심에서 비롯돼 추진됐다는 것.

철도청의 유전사업 참여는 열린우리당 이광재(李光宰) 의원이 부동산개발업자 전대월(全大月·구속기소) 씨 등에게 지질학자 허문석(許文錫·기소중지) 씨를 소개하면서 비롯됐다. 허 씨는 전 씨 등과 만난 이후 자신이 알고 지내던 왕영용(王煐龍·구속기소) 당시 철도청 사업개발본부장에게 이 사업을 제안했다.

왕 씨는 이를 김 당시 청장에게 보고했고, 김 청장은 개인적 공명심으로 사업을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온갖 편법과 불법 탈법이 이어졌다고 검찰은 밝혔다.

▽남은 의혹=검찰은 청와대 등이 범정부적으로 지원한 것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지만 곳곳에서 의문이 남는다.

검찰은 수사 초기 “허 씨가 없어도 국민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수사 결과를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허 씨의 부재로 인한 공백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가장 큰 의문은 유전사업이 김 전 차관 선에서 이뤄졌다는 부분이다. 검찰 수사를 통해 왕 씨가 지난해 8월 30일 청와대를 방문해 산업정책비서관실 김경식 행정관에게 유전사업에 대해 보고한 사실이 밝혀졌고, 그 열흘 뒤에는 전 씨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실 최모 행정관에게 유전사업 진행 상황을 파악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전 씨가 동향의 최 행정관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 씨가 이헌재(李憲宰) 전 경제부총리에게 은행 대출 청탁을 했는지도 허 씨의 잠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사건 관련자들 사이에 돈거래 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점도 의외다. 유일하게 금전적 이득을 취한 사람은 전 씨 1명이다. 철도청에서 사례비 명목으로 84억 원의 채권을 받아 자신의 빚 변제에 썼기 때문이다. 다른 관련자들은 한 푼도 챙긴 게 없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 부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소홀하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점=감사원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는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혹의 핵심 인물인 허 씨의 출국 방치는 검찰 수사에 근본적인 한계로 작용했다.

게다가 기본적인 문서 보안도 제대로 하지 못해 각종 감사 자료가 조사 대상자들 손에 고스란히 들어가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다.

검찰은 한 달여의 감사원 감사 후에야 사건을 넘겨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관련자들이 증거를 상당부분 파기하거나 검찰 조사에 대비해 서로 입을 맞춘 후였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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