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2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혁신박람회. 다수의 국내외 정부 부처와 민간기업이 참가해 혁신 성과를 소개하는 부스를 마련했다.
이곳에서 관심을 끈 곳은 단연 특허청 부스였다. 언제 어디서나 특허 관련 출원을 할 수 있고 심사 또한 시공을 초월해 이루어진다는 취지의 ‘유비쿼터스 서비스’를 모토로 한 특허청 부스에는 올해 3월부터 특허청 심사관 60여 명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공무원들이 재택근무라니….
# 집에서 집으로 출근
1일 오전 9시 대전 유성구 전민동 엑스포아파트. 특허청 전기전자심사국 컴퓨터심사담당관실 성경아(40) 심사관이 남편과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집을 나서자마자 문간방에 들어가 특허청에서 지급받은 컴퓨터를 켰다. ID와 패스워드를 입력한 후 컴퓨터 옆에 놓인 지문인식기에 지문을 대자 로그인이 됐다. 일단 정부원격접속서비스인 GPKI에 접속한 뒤 다시 ID와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외부인증서(디스켓)를 삽입하자 비로소 특허청 시스템인 특허넷에 들어갈 수 있었다. 》
특허청이 도입한 재택근무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허청은 특허출원 처리가 빨라야 2년 정도 걸리는 등 업무처리 지연으로 원성이 커지자 최근 3년간 400여 명의 심사관을 증원했다. 현재 심사관 수는 808명. 이에 따라 사무실 공간이 부족해지자 고육지책으로 재택근무제를 도입했다.
3월에 우선 60명을 대상으로 시범 실시키로 했으나 희망자가 부족해 결국 54명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신청자 중에는 의외로 남성들도 많았다. 신청을 꺼린 이유는 경력관리에 대한 피해의식과 상사 및 동료들과 대면근무를 못하는 데서 오는 고립감과 소외감에 대한 우려였다.
그러나 김종갑(金鍾甲) 특허청장이 직접 나서 “업무성과 위주로 평가하고 어떠한 인사상 불이익도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희망자에게는 ‘혁신점수’의 가점을 주겠다는 공약을 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재택근무가 업무처리 속도나 성과를 떨어뜨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재택근무자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5월에 2기 시범실시 참가 희망자를 모집하자 이번에는 희망자가 쇄도했다.
25개월 된 딸을 둔 강갑연(32·대전 서구 둔산동) 심사관은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럽다”며 “대구에서 공직 생활을 하는 남편과 상의해 둘째아이를 가지는 것을 고려 중이다”고 말했다.
특허청의 실험이 성공하자 다른 부처들이 벤치마킹에 나섰다.
재정경제부는 산하 국세심판원에 이를 도입하는 것을 전제로 특허청의 성공사례를 꼼꼼히 벤치마킹해 갔다. 정보통신부도 구체적인 내용과 자료를 수집해 갔다.
특허청은 내년 3월 이 제도를 본격 실시해 150명가량을 재택근무 시킬 방침이다.
보건복지부 박하정(朴夏政) 인구가정심의관은 “앞으로 공무원 사회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에서도 더욱 다양한 근무 방법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보수를 덜 받고 짧은 시간 근무하는 ‘단축근무제’나 자신의 사정에 맞는 시간대에 근무하는 ‘시차제근무제’가 도입되면 맞벌이 부부가 육아 때문에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전=정동우 사회복지 전문기자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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