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이 다시 웃는다…‘흙옷’ 입은지 10년

  • 입력 2005년 6월 7일 03시 06분


사제비 동산의 어제와 오늘1993년까지만 해도 등산객이 너무 많이 찾아 크게 훼손됐던 한라산 어리목등산로의 사제비 동산(왼쪽). 제주도가 자생식물을 옮겨다 심고 나무 굄목을 깔면서 새로운 풀이 살아나는 등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다. 사진 제공 한라산연구소·제주=임재영 기자
사제비 동산의 어제와 오늘
1993년까지만 해도 등산객이 너무 많이 찾아 크게 훼손됐던 한라산 어리목등산로의 사제비 동산(왼쪽). 제주도가 자생식물을 옮겨다 심고 나무 굄목을 깔면서 새로운 풀이 살아나는 등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다. 사진 제공 한라산연구소·제주=임재영 기자

《5일 오전 해발 1800m인 제주 한라산 장구목. 수많은 등산객의 발길로 자갈과 돌무더기로 변했던 등산로 주변에 제주조릿대, 김의털 등의 풀들이 점차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이 확연했다. 고산 희귀식물인 시로미도 띄엄띄엄 시야에 들어 왔다. 1985년 자연휴식년제 실시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이후 1994년부터 10년 넘게 지속된 훼손지 복구작업이 이제야 조금씩 빛을 보고 있었다.》

▽복원 가능성 보인다=한라산의 훼손지 복원을 위해 사용한 것은 ‘녹화마대 공법’. 가로 40cm, 세로 60cm의 녹색 마대에 흙을 담아 훼손지에 까는 공법이다. 1990년대 초 용역기관에서 제시한 그물형태의 매트를 까는 ‘앙카매트 공법’을 처음 도입했으나 흙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해 녹화마대 공법으로 바꿨다.

남벽 정상을 시작으로 2004년까지 115억 원이 투자돼 전체 훼손지의 58%인 13만1200m²에 대한 작업이 이뤄졌다.

이렇게 녹화마대가 깔린 훼손지는 10년이 지난 뒤 김의털, 백리향, 섬바위장대 등 164종의 식물이 뿌리를 내렸다.

녹화마대가 등산로 주변에 깔리고, 등산로가 걷기 편한 나무 굄목(침목) 길로 바뀐 뒤 폐허나 다름없던 어리목등산로 등은 새로운 풀이 자라나 안정된 생태계를 유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1994년부터 한라산 정상 남벽과 서북벽, 어리목등산로 등 훼손이 심한 지역에 녹화마대 공법을 도입한 결과 식물 피복이 최고 90%에 육박하고 있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부설 한라산연구소 고정군(高禎君) 연구팀장은 “현재까지 진행상황을 감안할 때 적어도 녹화마대를 깐 후 10년이 지나야 식생이 복원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한라산 훼손지에 대한 녹화마대 공법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훼손지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자연현상에 따른 훼손이 대부분.

이에 앞서 한라산은 1970년대부터 등산객이 크게 증가하면서 등산로와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상당한 훼손이 진행됐다. 균열이 쉬운 화산암과 토양응집력이 약한 화산회토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다른 산보다 훼손 속도가 훨씬 빨랐다.

1993년에는 어리목∼윗세오름 등산로, 정상 일대 등 19만5300m²가, 복원작업이 진행되던 2000년 조사에서는 22만5800m²가 훼손지로 조사됐다.

▽과제=그러나 이 같은 녹화마대 공법은 제주조릿대를 이상 번식시켜 한라산생태계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이견도 있다.

제주대 김문홍(金文洪) 교수는 “한라산에 녹화마대를 깔면서 고산식물이 설 자리를 잃었다”며 “녹화마대 공법을 적용하는 지역을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녹화마대 공법을 도입한 초기 저지대 식물 씨앗이 담긴 흙이 고지대에 깔리면서 토끼풀, 오리새 등 53종에 이르는 외래 목초가 유입되기도 했다.

고 팀장은 “초기의 시행착오를 또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 한라산 자생 식물종자를 채집한 뒤 해마다 녹화마대에 뿌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이광춘(李光春) 소장은 “자연현상에 따른 훼손은 자연에 맡기는 것이 순리”라며 “이제는 식물 천이(遷移)와 식생변화에 대한 장기 모니터링과 한라산 생태계 보호를 위한 전문인력 양성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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