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10년은 주민들이 직접 뽑은 자치단체장들이 지역 여건에 맞는 ‘맞춤행정’을 펼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관선(官選)시대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지방의회 및 자치단체장들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데다 중앙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 지역 격차의 심화 등으로 한국의 지방자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많다.
민선자치 10년을 맞아 지방자치제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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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직이 사업 수단=“○○재건축조합의 현 집행부가 그동안 깨끗하게 사업을 추진해 온 전 조합장을 해임한 뒤 검찰에 고발하는 등 문제점이 많은데 관리감독권자인 구청장은 어떤 행정조치를 취할 것인가.”
15일 오전 광주시 A구 구의회 임시회에서 질의자로 나선 Y 의원은 구청장을 상대로 자신의 송사(訟事)를 거론하며 민원(?)을 제기했다. Y 의원은 2003년 광주시내 한 재건축사업에서 조합장으로 활동하다 내부 갈등으로 조합장 직에서 해임된 인물.
주민들의 여론을 수렴해 지역 행정에 반영해야 할 지방의원들의 일탈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 의원 직을 사업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가 하면 심지어 로비의 통로로 이용하기도 한다.
반면 조례 제정·개정 등 지방의원들의 소임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01년까지 7년간 전체 조례에서 차지한 지방의원의 발의 비율은 10.5%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 89.5%는 집행기관의 몫이었다.
또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전국 250곳 지방의회에서 제정 또는 개정된 8만3558건의 조례 가운데 무려 607건이 의원들의 전문성 부족으로 위법 또는 월권 의결되는 바람에 재의되거나 소송에 휘말린 것으로 집계됐다.
▽자치단체장들의 전횡과 비리=대전시의 5개 구청장 가운데 3명은 현재 자신 또는 가족이 뇌물수수 등 비리 혐의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거나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행자부에 따르면 뇌물수수 등 비리 혐의로 기소된 1기 민선자치단체장은 전체의 10%에 못 미치는 23명이었으나 아직 임기가 끝나지 않은 3기 단체장은 무려 60명으로 4명 중 한 명이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여론을 무시하는 등 자치단체장들의 전횡도 잇따르고 있다. 김종규(金宗奎) 전북 부안군수는 2003년 7월 군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를 신청했다가 장장 8개월에 걸친 주민들의 유혈시위를 야기했다.
▽주민 관심 갈수록 줄어=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서 지방행정 및 선거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은 갈수록 줄고 있다.
지방자치제 부활 원년인 1995년 65.5∼78.1%에 이르던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2002년 3기 선거 당시 44.3∼71.1%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의 방향=전문가들은 지방자치가 자리를 잡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중앙 정부는 권한과 예산을 넘겨주지 않으려 하고, 지방 정부는 중앙의 권한을 넘겨받아 수행할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은 우선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들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 및 선거공영제 실시, 지방의원들의 유급화 및 의원수 축소 등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이주희(李周熙) 한국지방자치학회 회장은 “우리나라와 서구 선진국과는 지방자치의 역사적·지리적 환경이 다르다”며 “외국의 제도를 모방하기보다 제주특별자치도 등 각 지역의 특색에 맞게 지방자치의 틀을 갖춰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지역총생산 서울 73조 늘때 경남은 겨우 4조 성장▼
올해 충남 천안시 예산은 1조100억여 원으로 청양군(1506억 원)의 7배다. 천안시는 수도권과 가까워 각종 개발이익이 급증하고 기업체도 몰리고 있다.
청양군은 인구가 3만5000여 명이지만 천안시는 지난해 말 50만 명을 돌파해 유공 공무원에게 해외여행을 보내주었다. 청양군 전체 초등학교는 15곳에 학생수가 2095명으로 천안 쌍룡초등학교 1개교의 학생수(1750명)와 비슷할 정도다.
지방자치의 당초 취지는 지역의 특성과 실정에 맞게 균형발전을 꾀하자는 것이지만 기초자치단체 간의 격차는 물론 수도권-비수도권, 도시-농촌, 신도심-구도심 간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1995∼2003년 지역내총생산(GRDP)을 보면 충남은 배 이상 성장한 반면 경남은 소폭 성장에 그쳤다.
울산의 5개 기초자치단체 중 부촌인 남구와 농어촌지역인 울주군의 인구·재정 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있다.
서울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서울서베이’에 따르면 가구주의 4년제 대졸 학력 비율은 강남권(서초 강남 송파 강동)이 36.1%이고 강북권(성동 광진 동대문 중랑 성북 강북 도봉 노원)은 22.3%였다.
지역내총생산 규모 (단위: 백만 원) | ||
1995년 | 2003년 | |
서울 | 102,171,454 | 175,229,763 |
부산 | 26,141,248 | 42,615,653 |
대구 | 15,782,226 | 24,336,467 |
인천 | 21,064,169 | 34,918,520 |
광주 | 9,486,168 | 15,722,852 |
대전 | 9,559,536 | 17,133,867 |
울산 | 0 | 34,672,451 |
경기 | 72,568,945 | 139,934,234 |
강원 | 12,039,965 | 20,440,100 |
충북 | 14,038,231 | 22,845,171 |
충남 | 17,330,168 | 37,959,847 |
전북 | 14,112,203 | 22,285,999 |
전남 | 20,908,858 | 34,838,628 |
경북 | 25,931,314 | 49,291,194 |
경남 | 44,799,195 | 48,641,391 |
제주 | 4,196,907 | 6,738,400 |
전국 | 410,130,587 | 727,604,537 |
1998년부터 울산시가 경남에서 분리. 자료: 통계청 |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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