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5년]<상>국민의식 변화

  • 입력 2005년 6월 27일 03시 11분


《2000년 7월 1일. 의사에게 처방전을 받은 뒤 약국에서 약을 사도록 하는 의약분업이 실시됐다. 의사들은 의약분업을 반대하며 유례 없는 파업을 감행했다. 병원에는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몰려들었고 환자들은 약을 구하느라 극심한 불편을 겪어야 했다. 의약분업을 계기로 국민은 김대중(金大中) 정부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5년. 의약 갈등은 여전히 해소되지는 않고 있지만 많은 사람이 의사에게 진료 받고, 약국에서 약을 사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의약분업 5주년을 맞아 국민의 의식 변화와 의약분업의 득실을 따져보는 시리즈를 게재한다.》

얼마 전 어린이장염이 유행할 때였다. 주부 조모(34·서울 성동구 금호동) 씨의 둘째아들(2)도 예외는 아니었다. 38도 이상의 고열이 며칠째 계속됐다. 체온은 39도를 넘어선 뒤 떨어지지 않았다. 목도 심하게 부어 물도 삼키지 못했다.

조 씨는 소아과 의사에게 항생제 처방을 부탁했다. 그러나 의사는 “증상이 가볍지는 않지만 당장 항생제를 써야 할 정도는 아니다”며 처방을 거부했다. 조 씨는 ‘큰아들(5)이 어렸을 땐 항생제를 줬는데…’라고 말하려다 항생제의 위험성을 생각하고 그만 입을 다물었다.

본보 취재팀이 의약분업 5주년을 맞아 22일 하루 동안 서울과 경기지역 14개 중·대형 병원 외래환자 5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5명 이상이 “의약분업 이후 의약품 오남용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의약분업, 절반은 성공했다”=의약분업은 5년의 세월과 함께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제도 자체에 대한 국민의 이해가 높아졌다.

제도 시행 전인 2000년 3월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의약분업을 찬성하는 비율은 38.7%, 반대는 45.9%였다. 반대자의 67.9%가 ‘불편할 것이다’라는 점을 반대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이번 본보 조사결과 ‘지난 5년간 약 사용량이 늘었다’는 응답은 7.8%인 반면 ‘줄었다’는 응답이 4배나 많은 30.8%로 나타났다. 55.4%가 필요 없는 약 사용이 줄어든 것을 의약분업 이후 가장 편해진 점으로 내세웠다.

국민이 의약분업 제도를 신뢰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그동안의 조사에서는 의약분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심각했다. 2003년 에이스리서치 조사의 경우 ‘의약분업 제도 도입은 잘못된 정책’이란 평가가 56.4%로 ‘잘한 제도’라는 응답(25.2%)의 두 배를 넘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83.9%가 현행대로 의약분업을 유지하거나 현 제도를 바탕으로 개선안을 찾는 게 좋다고 대답했다.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16.2%에 불과했다. 특히 의약분업 체제에 익숙한 젊은 층일수록 현 제도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20대의 96.3%, 30대의 85%가 제도의 폐지에 반대했다.

‘현 제도를 굳이 손질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자 중 43.9%가 ‘이미 제도가 정착됐기 때문’을 의약분업 폐지 반대의 이유로 꼽았다.

▽“이런 점은 고쳐 주세요”=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의약분업을 ‘불편한 제도’라고 여기고 있었다.

의약분업 실시 이후 ‘편해졌다’는 응답은 4.9%에 불과했다. 편해진 점을 묻는 질문에도 36.1%가 ‘없다’ 또는 ‘기타’라고 대답했다. 의료서비스가 좋아졌다거나 의료비가 줄었다는 응답은 10명 중 2명꼴에도 미치지 못했다.

시민들은 ‘병원과 약국을 오가야 한다’는 점(79.7%), 이에 따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52.8%)을 가장 큰 불편사항으로 꼽았다.

약품 구입방식을 개선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응답자의 56.3%가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의 종류를 늘려 줄 것을 원했다. 의약분업 시행 이전에는 일반의약품 비율이 60%를 넘었으나 현재는 50%에 못 미치고 있다.

또 의사가 약을 처방할 때 여러 종류의 약을 제시하고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이 42.6%로 높게 나타났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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